人形(인형) <3>

  “바보 같은 자식, 별 하나 찾지 못하는 눈알을 가졌구나.”
  일호는 인형을 하늘로 힘껏 던졌다. 인형은 하늘을 향해 곧바로 올라가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 졌다. 보도블럭 위에 깨어진 인형의 잔해가 흩어졌다. 파괴된 인형, 그것은 아무 쓸데없는 플라스틱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일호는 그냥 하늘을 쳐다보며 걸었다. 그의 눈에서 슬픈 물방울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인형의 눈이 무엇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일호는 계속 벽돌을 날랐고, 건물은 이제 그 빈틈없이 조작된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의 꼭대기까지 벽돌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가교(假橋)를 오르내려야 했다. 조감도에 나타난 맨 위층까지 연결된 가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안스럽게 출렁거렸다. 급경사의 그 가교를 벽돌을 짊어지고 오르내리는 것은 일종의 곡예였다. 일호는 벽돌을 짊어지고 가교의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위를 쳐다보았다. 벽돌들이 날렵하게 제자리에 놓여져서 정연하게 아귀를 맞추고 있었다. 현기증이 났다. 몸이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았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중심을 잡기 위하여 몸을 비틀었다. 때문에 등에 졌던 벽돌들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했다. 둔탁한 충격음이 무질서하게 들려왔다.
  —벽돌의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인형의 잔해가 보도의 시멘트 블록 위에 흩어져 있었다.
  감독이 사납게 소리치며 일호는 불렀다. 마지막 날인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겠느냐고 호통 쳤다. 일호는 실수였다고 정중하게 사과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바보 같은 자식.”
  일호는 울고 싶었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만은 아니었다고 말하지 못한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아침에 오늘로써 벽돌 운반 작업은 끝이 나므로 내일부터는 나올 필요가 없다고 감독이 말했을 때, 일호는 참으로 반가움을 느꼈었다. 앞으로 벽돌 나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일당을 받아들고 일호는 <인형의 집>을 찾았다. 주인이 인형 하나를 집어주었다. 일호가 인형 값을 지불했고 주인이 그것을 받으며 말했다. “도대체 당신은 언제까지 인형 사길 계속할 작정이오.”
  일호는 앞으로 <인형의 집>에 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약간 지체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좀 앉아도 되겠소?”
  “앉으시오.”
  “당신은 언젠가 인형을 사는 이유가 뭐냐고 내게 물었었죠?”
  “그렇소만.”
  주인이 호기심에 차서 성급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기 때문이오.”
  “묘한 말이군요.”
  “내가 사고 싶은 것은 인형제조기였소”
  “그야 쉬운 일이잖소. 돈만 있으면”
  “그렇지 않소. 만약에 당신이 그걸 가지고 있다면 팔겠소?”
  “…”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단지 당신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하수인, 그렇소,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제품을 팔아주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 거요.”
  “지나친 말이군요.”
  “아, 흥분할 필요까진 없소.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아까의 얘기로 돌아가서, 당신이 설사 그 제조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팔 수 없을 거요.”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이유가 뭐요?”
  “이유 말이오? 만약 당신이 그것을 팔면, 당신이 지금까지 이끌어 온, 그리고 앞으로도 이끌어 나가야 할 당신의 생활조직체계가 파괴되기 때문이오. 그게 두려워 당신은 감히 팔지 못할 것이오.”
  “지나친 추측이군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소.”
  “물론이오. 그러나 당신이 하는 일은 방법이 틀릴 뿐 결국은 똑같은 일일 수밖에 없소. 획기적인 전환이 없는 한 지금까지 당신이 다져온 사고(思考)의 본질은 변하기 힘들기 때문이오. 처음부터 인형을 만들고 파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소.”
  “그렇다면 당신은 그 제조기 사는 일은 포기했다는 말이오?”
  “포기, 그렇다고 말할 수 있소. 하지만 포기한다는 것은 단지 매매행위를 포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오.”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군요.”
  “알게 될 것이오. 알아야 되오. 문제는 그것이 언제냐 하는 것일 뿐.”
  주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가게 안으로 손님이 들어왔다. 가게 주인과 일호는 동시에 일어났다. 일호가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내일 다시 들르겠소.”
  그때 주인이 다급하게 한 마디 던졌다.
  “한 가지만 더. 도대체 당신은 인형제조기를 사서 무엇을 하려고 하오.”
  일호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무겁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것을 부숴버릴 것이오.”
  숙소로 돌아온 일호는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방의 여기저기에 갖가지 모양의 인형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일호가 그동안 그 가게에서 사 모은 것들이었고, 일호에 의해서 다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일호는 새로 산 인형의 모습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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