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간 이해와 규제 사이의 균형 …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중요

▲토아파요 HDB 단지 내에서 다양한 인종의 주민들이 장터를 열고 있다(사진기자 = 김민지).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며, 이는 흔히 단일민족 국가라 불리던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이 됐다. 하지만 이질적인 집단들이 불만 없이 서로 원만하게 어우러져 지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문화 사회’로 알려지기까지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을까?

싱가포르, 다문화의 용광로가 되다

싱가포르에서는 중국계 76%, 말레이계 14%, 인도계 8%를 주축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리고 각 민족들마다 차이나 타운, 리틀 인디아, 아랍 스트리트 등의 마을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그들의 문화를 유지해오고 있다. 각각의 문화에 따라 싱가포르에서는 자연스럽게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게 됐으며 불교사원, 이슬람사원, 성당 등 다양한 종교 경관도 함께 나타났다.

싱가포르가 현재 모습과 같은 다문화 사회가 되기까지는 역사적인 배경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에 중국, 인도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노동력의 필요에 의해 싱가포르로 유입됐던 것이다. 그러다 1964년 7월 21일 중국계와 말레이계 간에 인종폭동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후 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이날을 민족화합의 날로 정해 이어오고 있다.

싱가포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난 이후에도 여러 인종집단들이 공존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는 각자 일하고 있는 산업 분야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갈등 요인이 적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산업들 간의 교류 시에는 다른 인종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는 측면도 있다.

싱가포르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살았기에, 서로의 다름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러한 시선은 일상 속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 출신 사람들과 일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카플란 대학교 학생 그레이스 씨는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히잡을 쓰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어도 그냥 싱가포르 사람으로 보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싱가포르 직장인 에와 핀코우스카 씨는 “내가 일하고 있는 팀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런 점이 현대 사회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인종 간 교류를 돕는 주택 분양제도

싱가포르는 정책적으로도 다양한 인종이나 문화권 사람들의 공존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HDB라 불리는 정부 주도 주택 분양제도이다. 그 방침에 따르면 각 주택단지들은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그 외 기타 인종을 총 4개로 나누어 정해진 비율에 따라 입주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비율은 실제 싱가포르의 인구 구성비와 유사하게 정해져 있어 특정 인종에게만 분양 기회가 편중될 우려가 적다. 이로써 다른 인종들끼리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주거시설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정책 접근성 측면에서도 현실적이다.

각 주거단지에는 ‘커뮤니티 센터’라 불리는 공동체 시설이 있어 주민들은 이웃들과 그곳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면서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다. 한 토아파요 단지 주민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이나 운동 또는 세미나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다양한 인종의 이웃들을 만나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HDB 단지들은 스포츠 센터나 국립공원과 인접하게 위치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 주민들 간에 교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싱가포르 경영대학 미카엘 창 팡 치엔 교수는 “가령 민족화합의 날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전통 복장을 하고 복고풍 게임을 함께 하기도 하면서 어울리는데, 이런 식으로 HDB, 스포츠 센터, 국립공원이 싱가포르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고 말했다.

서로 간 이해를 중시하는 다문화 교육
 

싱가포르에서는 원만한 다문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공교육 정책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중 언어 교육이다. 이중 언어 교육이란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영어와 그들 자신의 모국어를 함께 배우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공교육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에게 다른 인종 집단의 사회나 역사에 대해서도 가르치도록 한다. 이러한 다문화 교육 시스템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싱가포르의 다문화 사회 유지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 경영대학 학생 자신 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받았던 언어교육과 사회 교과목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공립학교에는 다양한 문화를 배우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됐다. 정부 방침상 한 학급 내에 인도계, 말레이계 등 다양한 인종 학생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싱가포르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들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된다. 단순한 학교 공부를 넘어서 직접 경험하면서 다문화 사회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워가도록 하는 것이다.

적당한 엄격함이 지켜주는 다문화 사회
 

싱가포르의 다문화 사회는 존중과 이해 등과 같은 가치를 중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격함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다문화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우선 싱가포르는 능력주의 사회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문화 다양성을 지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중학생 때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의 학업 능력에 따라 진로 목표를 정해준다. 그에 따라 대학 진학을 준비할 것인지 직업 훈련을 할 것인지로 나뉘게 된다. 이후로도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능력주의 풍조는 주류 인종인지 소수 인종인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타 인종이나 종교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일체 금지된다. 서로 다른 집단들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면 재발 방지를 위해 법적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일례로 2013년에 중국인과 말레이인 간에 큰 갈등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 일이 음주로부터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밤 11시 이후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는 법으로 금지되었다. 싱가포르 한인회 소속 노종현 씨는 “싱가포르 정부는 서로 다른 집단 간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집단에게도 편향된 정책을 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다문화가 나아갈 방향

사실 싱가포르의 다문화는 한국의 다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싱가포르에서는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종집단들이 어울려 살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의 경우 불과 얼마 전부터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공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쪽 모두 동일하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교육 환경이다. 사회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다수자들에게도 서로의 공존을 위한 태도나 행동, 또는 가치관을 익히게 할 필요가 있다. 학자 뱅크스에 따르면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다양한 집단들 간에 평등을 위한 교육을 다문화 교육이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간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문화 교육은 초등학교 이하에 집중돼있어 중·고등학교까지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다문화 교육의 대상을 이주민만이 아니라 정주민도 포함되고, 더 넓은 범위의 연령대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회원 김양현 씨는 “다문화 교육이나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점을 단순히 이주로만 설정하지 않고 한국 내에서 그간 존재했던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더 잘 다룰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평등을 교육에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한인회 노종현 회장

 

▲싱 가포르 경영대학(SIM) 미카엘 창 팡 치엔(사진기자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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