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응답 학우 90% 이상 일본풍 가게 증가 체감해
높아진 문화 수용력, 일본 문화 열풍의 이유
“한류 열풍도 이어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

지난 16일 우리대학과 멀지 않은 을지로를 찾았다. 골목에서 마주친 한 식당은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본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일본행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한국에서 쉽게 일본식 철판 요리를 즐기며, 일본 현지의 오마카세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선 ‘일본스러움’이 하나의 트렌드로 들어섰다. 이에 동대신문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일본풍 문화를 들여다보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에 위치한 선술집의 모습 (사진=김주영 기자.)

여기도 저기도 일본풍 가게

홍대, 강남, 혜화 등 청년세대가 자주 찾는 번화가로 나가면 일본어로 된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김예지(산시공 20) 학우는 “신촌을 걷다 보면 유난히 일본풍 가게가 많이 보인다”며 일본풍 가게의 증가를 체감했다고 전했다. 일식 전문점이 한국 상권에 뿌리내렸음은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통계청 전국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일식 전문점은 2016년 10,549개에서 2021년 17,846개로 5년 사이 69.2% 증가했다. 2022년에 집계된 일식 전문점의 수는 무려 21,553개에 달했다. 또한 인스타그램의 ‘일식’, ‘일식집’ 해시태그는 각각 92.6만 개, 7.5만 개에 달하며 한국에서의 일본풍 가게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일본어 포스터로 꾸며진 국내 일식점 (사진=김주영 기자.)
▲일본어 포스터로 꾸며진 국내 일식점 (사진=김주영 기자.)

 

▲우리대학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일러스트=이하영 기자.)
▲우리대학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일러스트=이하영 기자.)

동대신문이 우리대학 학생 55명을 대상으로 4일간 진행한 설문에서 일본풍 가게 증가에 대한 학우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1년간 한국에서 일본풍 가게의 증가를 얼마나 체감하는가?’ 항목에 응답자 56.4%가 ‘매우 많이 체감한다’, 34.5%가 ‘많이 체감한다’고 답변했다. 즉 응답자의 90%가 일본풍 가게의 증가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마주한 J-컬쳐, 그 매력은?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일본풍 가게의 증가를 체감할 정도로 일본 문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경제의 매경이코노미가 진행한 ‘J-컬쳐부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1%가 ‘일본 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본문화에서 선호하는 카테고리 중 ‘콘텐츠’가 46.11%로 1위를, ‘음식’이 26.35%로 2위를 차지하며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일본풍 문화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는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 수가 증가한 것에 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의하면 2023년 방일 외국인 관광객 2,506만 6,100명 중 한국인은 695만 8,500명으로 관광객 비율 1위(27.8%)를 차지했다. 이에 송정현 우리대학 일본학과 교수는 “방일 한국인이 7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일본 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의 증가는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져, 한국에서도 일본풍 가게가 자연스레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풍 가게가 유행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질적인 공간이 주는 새로움에 있다. 일본식 홍등이 비추는 차별적인 조명과 일본 전통 인테리어로 꾸며진 일본풍 가게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는 젊은 층에게 신선한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송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를 봤을 땐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그림처럼 인식한다”며 “외국어 간판이 달린 거리를 봤을 때 세련됐다고 느끼는 이유”라고 전했다. 이처럼 일본풍 가게는 새로움을 찾는 이들의 니즈(needs)에 부합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SNS를 통해 문화·콘텐츠를 국경 없이 넘나드는 이른바 ‘보더리스(Borderless) 세대’가 도래하며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심다은(지리교육 22) 학우는 “일본 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며 “일식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굳이 해외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일식을 쉽게 즐길 수 있게 돼 좋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누리고자 하는 청년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일본풍 가게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청년세대의 경우 다양한 문화를 선택지로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선택해서 즐긴다”며 “일본 문화 역시 여러 문화의 선택지 중 하나로, 이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청년들이 증가했다”고 전해 타문화에 대한 청년들의 높은 수용성을 강조했다.

거리 곳곳에 스며든 일본어 간판

한편 간판·메뉴판을 일본어로만 표기하거나 가격을 엔화로 표시하는 가게가 생겨나며 불편함을 느낀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김 학우는 “일본 현지의 느낌을 살리고자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어만을 간판에 적어놓은 가게가 종종 보인다”며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손님에게 혼란과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우려되는 부분을 전했다.

실제로 2019년 ‘한글문화연대’가 12개 자치구의 간판 7,252개를 조사한 결과 ▲외국어 간판은 1,704개(23.5%) ▲외국어·한글 혼용 간판은 1,102개(15.2%)로 한국 거리에 많은 외국어 간판이 생겨났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 2항에 따르면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 한다. 또한 간판 문구를 외국 문자로 표기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함께 적어야 한다. 그러나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신고 대상을 ‘면적이 5㎡ 이상이거나 건물 4층 이상의 층에 표시한 것’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면적이 5㎡가 되지 않는 경우나 건물 3층 이하의 간판은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 게다가 옥외광고물법에는 처벌 조항이 없어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불어 전국의 전통 거리에도 일본풍 가게를 포함한 외국어 간판을 단 가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주 ‘황리단길’이나 전주 ‘한옥마을’과 같은 국내 관광지에 일본어 간판이 달리거나, 일본 가요가 흘러나와 전통 거리의 분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특히 경주시는 한국 전통 분위기를 위해 대릉원 일대를 문화재와 함께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구’로 관리하고 있다. 경주시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옥외광고물은 한옥 건축물과의 조화를 위해 한글과 한문만 사용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외국어 사용이 가능하지만 주 표기의 절반 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향해

한국에서 일본풍 문화의 인기가 증가한 와중, 한국과 한국 문화를 찾는 일본인들도 많아졌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3년 1, 2월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16만 1,293명으로 전년 동기간(4,096명) 대비 40배나 급증했다. 이때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대만인 9만 7,447명 △미국인 9만 5,325명 △중국인 7만 830명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17.6%)을 차지했다. 송 교수는 “한국에서의 일본풍 문화 유행과 동시에 일본에서도 한류 영향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4차 한류’ 흐름이 시작돼, 한국어로 된 간판이 달리거나 한국을 연상케 하는 음식점 등을 일본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일본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 안세영(멀미공 22) 학우는 “일본 거리에서 한국어로 된 간판·전광판이 달린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었다”며 일본에서 체감한 한류를 전했다. 

▲일본에 위치한 한국식 주점 ‘홍대포차’ 내부 (사진출처=‘홍대포차’ 공식 인스타그램.)
▲일본에 위치한 한국식 주점 ‘홍대포차’ 내부 (사진출처=‘홍대포차’ 공식 인스타그램.)

일본의 대표 관광지인 오키나와에 위치한 한식점 ‘비소리포차’는 한국어 간판이 달렸을 뿐만 아니라 가게의 외관부터 한국 소주로 장식돼 있다. 또한 일본 편의점 ‘세븐일레븐 재팬’은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2023 한국음식페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편의점의 한 코너가 한국 음식으로만 채워져 2주 동안 판매되는 행사였는데, 음식들이 빠르게 매진되며 한식의 인기를 증명했다. 나아가 한국의 코스매틱 브랜드 ‘롬앤’은 일본 편의점 ‘로손’과의 협업으로 ‘앤드바이롬앤’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일본 최대 화장품 플랫폼 ‘립스’에서 트렌드상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도 음식, 화장품,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한국 문화가 트렌드로 정착했다.

일상에서 쉽게 타문화를 접하고 K-컬쳐 또한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다양한 문화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문화란 여러 지역과 삶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라며 특히 일본풍 가게가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 “일본풍 가게는 경험을 판매하고 우리는 그 경험을 사는 것일 뿐, 이런 문화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전해 한국에 불어온 새로운 문화를 대하는 방식을 전했다.

 

사람부터 문화까지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빈번해진 지금, 전 세계가 연결돼 글로벌한 문화의 장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무경계’의 시대가 도래했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가까운 곳에서 다채로운 문화를 접해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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