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生六記(부생육기)를 읽고

  浮生六記(부생육기)는 청나라 건륭(乾隆) ‘가경’(嘉慶)연간에 살았던 沈復(심복)의 자서전이다. 작자가 그의 사랑하던 아내 ‘운’에 대한 추억을 기점으로 해서 한 인생을 사실대로 쓴 글이다.
  ‘운’은 이 책의 묘사로 보아서는 뛰어난 미모의 여인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녀는 알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또 멋을 부릴 줄 아는 여인이었다. 인생을 노래하며 문학·미술·음악을, 즉, 예술에 대한 예리한 눈과 박식을 갖추고 ‘심복’과 진지한 토론도 한다. 그러한 ‘운’이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권태를 모르고 그의 남편을 받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러는 시부모 몰래 만년교에 나가 뱃놀이도 즐기며, 또 남장을 하고 수선묘의 축제를 구경하기도 하고 자기보다 예쁜 ‘감원’이라는 기생을 그의 남편 ‘심복’의 첩으로 삼는데 열중하기도 한다.
  ‘운’은 18세기식의 여인상이 아니라 자기를 현실에 부각시키려는 의지가 뚜렷이 보이는 여자라고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무척 예의바르며 타인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또한 그의 남편에게는 너무나 정숙한 여인으로서 아내로서 예의를 지켰다. 흔히 범하기 쉬운 감정적 충돌, 친하면 친할수록 예의 같은 것은 무시하려드는 요즘의 젊은 남녀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불어 넣어주는 주인공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친할수록 깍듯한 예절 속에서 이어져 나가는 藝(예)의 생활. 그의 남편에게 밥상을 들고 가서도 샤샤(죄송해요)라고 말하는 정도다.
  작자 심복은 벗들과 술과 노래로 살았다. 시를 짓고 산책하며, 분경을 꾸미고 명산대천을 탐방하는, 즉 한마디로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결국 심복의 이러한 기질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아내 ‘운’의 여유에서 현실 세계와의 갈등이 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방 세도가들과 결탁하기만 하면 돈을 벌수도 있었지만 그러기보다는 자연 속에서의 산천구경이 더욱 더 마음에 든다.
  그들에 비해 너무나 선량한 주위 사람들. 그들 때문에 언제나 궁핍한 생활을 꾸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욱 대가족 제도하의 생활규범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생활. 완고한 집안에서 두 번이나 쫓겨나고 그러는 사이에 가난은 항상 그들 것이 되어갔다.
  그러나 물질적 토대위에 피어나기도 하는 현대에 있어서 남녀 간의 사랑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행복을 누리는 그들. 정신적인 애정으로써 꾸밈없이 꾸려나가는 결혼생활 23년 만에 그의 아내 ‘운’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심복은 그 후 혼자서 여생을 보낸다. 이 책은 아내가 돌아간 후 못 잊을 아내의 일생을 되새기며 구원의 여인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부생(浮生)이란 李白(이백)의 詩(시) “淨生若夢(정생약몽)·爲歡幾同(위환기동)?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이원서)”에서 택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전체를 六記(육기)로 나누어 1記(기)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하기까지의 즐거운 이야기를, 2記(기)에서는 생활 주변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3記(기)에서는 애정과 방랑의 현실적인 생활에서 겪은 여러 가지 비극을, 4記(기)에서는 국내 명산대천의 순례 이야기를, 5記(기)에서는 바다의 풍경과 오끼나와를, 6記(기)에서는 건강문제를 다루면서 인생의 해탈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일상적인 자잘한 것에서 사랑을 느끼는, 격조 높은 생활이 공감을 주고 있다.
  여기서 심복은 한평생을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했음이 두드러진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사랑이지만 맑고 진실한 사랑을 한 여인에게 주는 생활 자체가 더없이 정화된 느낌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고 있다. 작자는 결코 위인은 아니다. 평범한 인간다움과 아내의 여성적인 아름다움은 교훈적인 가치가 충분하다.
  예절의 한계가 분명하지 못한 요즈음 “순수”한 도덕적 규범이 절실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우리 생활과 유사한 중국인의 풍습과 생활관습에서 공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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