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이 한국 민족의 공동체적 심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인의 사상과 신앙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서 저술하였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불유쾌함을 떨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령 1부인 ‘총론’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어보라. “조선의 역사는 독립 국가의 역사로서의 가치는 없다.”

“조선의 문학은 예술과 함께 자못 빈약하다 하겠다.” “조선의 철학은 진보도 없고 발전도 없이 처음부터 화석화되었다.” 이러한 전제를 총론으로 삼고 각론에서는 조선인의 민족적 특성으로 모두 열 가지의 항목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것은 각각 ‘사상의 고착’, ‘사상의 종속’, ‘형식주의’, ‘당파심’, ‘문약(文弱)’, ‘심미관념의 결핍’, ‘공사(公私)의 혼동’, ‘관용과 위엄’, ‘순종’, ‘낙천성’이다. 저자는 이 중 앞의 일곱 항목은 조선인의 결함으로 지적하고, 뒤의 세 항목은 조선인의 장점으로 언급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상의 고착’과 ‘사상의 종속’은 조선인의 심성 중 가장 근본적인 특성으로 영원이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형식주의로부터 공사의 혼동에 이르는 다섯 가지 특성은 일본의 문화적 통치가 이어지면서 식민지 교육의 감화를 받게 되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자질들이다. 그리고 관용과 위엄, 순종, 낙천성이라는 세 가지 조선인의 아름다운 자질은 적극 장려해야 하지만 조선에서 이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두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듣고 나면 이 책이 일본 제국주의 어용학자가 조선의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펼치기 위해 기획된 저서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지도 모른다. 1921년에 간행된 ‘조선인’이 이후 조선총독부의 비밀조사자료인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에 실렸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이런 판단이 올바르다는 증거로 작동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만으로 이 책을 읽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조선의 관제와 문화유산, 고서적을 연구하고 정리한 학자로서, 저자가 이 책에서 학문적인 엄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조선의 민중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카하시 도루의 민족성론이 기반하고 있는 근대적 학지(學知)가 오늘날에도 연면히 이어져서 지금 여기의 우리 학문의 토대와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들 우리 사회와 문화, 그리고 학문 속에 남아 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다고 해서 일제의 모든 통치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민족성론에 맞서서 조선 역사와 문화의 찬란한 유산과 조선민족성의 우월함을 역설한다고 해서 근대 이후 한국인이 경험한 식민주의의 부정적인 결과가 청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공동체의 보편적 심성과 문화적 동일성을 표상하고 정의하는 행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늘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 시선을 우리들의 자신과 타자를 향한 표상행위로 돌려서 사유할 수 있을 때, 이 책을 읽는 행위는 그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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