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지상) 심포지움<完(완)>

國文學史上(국문학사상)의 文學精神(문학정신)

批判精神(비판정신)은 實學思想影響(실학사상영향)

李朝後期(이조후기) 小說(소설)은 거의 諷刺的(풍자적)

○…이 땅에 國文學硏究(국문학연구)가 시작된 후부터 여러 사람들이 國文學(국문학)의 傳統(전통)을 摸索(모색)하여 자기의 說(설)을 開陳(개진)하였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結論(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음은 國文學硏究上(국문학연구상) 가장 重要(중요)한 課題(과제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우리 文學(문학)에도 우리 文學(문학)만이 지니고 있는 어떤 傳統(전통)이 있는가? 있다면 그 傳統(전통)은 무엇이며 그 傳統(전통)을 어떻게 繼承(계승)·發展(발전)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또한 問題(문제)이다 國文學(국문학)의 傳統(전통)을 어떻게 繼承(계승)해야 할까 하는 問題(문제)는 今後作家(금후작가)들에 의하여 論議(논의)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國文學(국문학)의 傳統的(전통적)인 文學精神(문학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主(주)로 小說文學(소설문학)을 통하여 나대로의 摸索(모색)을 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小說文學(소설문학)은 다른나라의 文學史(문학사)에서와 마찬가지로 詩歌文學(시가문학)보다는 훨씬 뒤져서 發生(발생)하였던 것이다. 즉 一五世紀(일오세기) 李氏王朝(이씨왕조)로 들어와서였다. 그러므로 李氏五百年(이씨오백년) 동안에 쓰여진 小說文學(소설문학)에서 우리는 韓國小說(한국소설)의 傳統的(전통적)인 文學精神(문학정신)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筆者(필자)가 摸索(모색)해 본 것을 一言(일언)으로 蔽之(폐지)한다면 民族精神(민족정신)과 反抗精神(반항정신)이라 하겠다. 그러면 이러한 文學精神(문학정신)이 小說文學(소설문학)에서는 어떻게 具體的(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가를 먼저 民族精神(민족정신)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政治思想史上(정치사상사상)으로 볼 때 民族主義(민족주의)가 대두한 것은 世界一次大戰(세계일차대전)이 끝난 現世紀初(현세기초)부터 였으나 文學思想上(문학사상상)으로 볼때에는 一六世紀(일육세기) 文藝復興以後(문예부흥이후)이다.

歐羅巴(구라파)에 있어서 文藝復興(문예부흥)을 契機(계기)로 하여 英(영)·獨(독)·佛(불)等(등) 諸國(제국)에서 展開(전개)된 國民文學運動(국민문학운동)은 民族主義(민족주의)의 文學的(문학적)인 運動(운동)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民族主義(민족주의)가 文學精神(문학정신)으로 昇化(승화)되지는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英(영)·獨(독)·佛(불)등 諸國(제국)이 로마法王(법왕)에게 宗敎的(종교적)으로 支配(지배)되어 있었을 뿐이요, 政治的(정치적)으로는 支配(지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民族主義(민족주의)가 政治思想(정치사상)으로 또 文學精神(문학정신)으로 昇華(승화)하게 된 것은 弱小民族(약소민족)이 强大民族(강대민족)에게 支配(지배)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는 半萬年(반만년)의 歷史(역사)를 지니고 있는 民族(민족)이지마는 政治的(정치적)으로는 統一新羅(통일신라)때부터 李朝初葉(이조초엽)까지 强大(강대)한 中國民族(중국민족)에게 支配(지배)되어 왔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歷史的背景(역사적배경)으로 보아 일찍부터 民族主義(민족주의)가 發芽(발아)하였을 것이었으나 歷代(역대) 王朝(왕조)의 事大慕華政策(사대모화정책)으로 인하여 發芽(발아)되지 못하였다가 最近世(최근세)에 이르러 外來(외래)한 自由主義思潮(자유주의사조)의 影響(영향)을 받고야 비로소 대두하였던 것은 周知(주지)의 史實(사실)이다.

敍上(서상)과 같이 政治的(정치젂)으로는 民族主義(민족주의)가 强大(강대)한 中國民族(중국민족)에게 支配(지배)를 받던 時代(시대)에 대두하지 못하였지마는 精神生活(정신생활)의 産物(산물)인 文學上(문학상)에느 民族主義(민족주의)가 하나의 文學精神(문학정신)으로 表現(표현)되었다는 事實(사실)을 우리는 ‘崔孤雲傳(최고운전)’ ‘李泰景傳(이태경전)’ ‘壬辰錄(임진록)’ ‘南允傳(남윤전)’ ‘朴氏傳(박씨전)’ ‘林慶業傳(임경업전)’ 等(등)의 小說作品(소설작품)에서 發見(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崔孤雲傳(최고운전)’은 新羅末葉(신라말엽)의 歷史的(역사적) 人物(인물)인 崔致遠(최치원)을 모델로 한 作品(작품)이거니와 歷史的(역사적)으로 親唐人物(친당인물)인 崔致遠(최치원)을 作者(작자)는 小說(소설)의 世界(세계)에서는 徹底(철저)한 反唐人物(반당인물)로 登場(등장)시켜 놓았다. 그리하여 作者(작자)는 崔致遠(최치원)으로 하여금 우리民族(민족)의 긍지와 能力(능력)을 中國民族(중국민족)에게 誇示(과시)토록 하였다. 이 作品(작품)에서는 中國(중국)의 文人(문인)과 國王(국왕)이 崔致遠(최치원)에게 餘地(여지)없는 敗北(패배)와 侮辱(모욕)을 當(당)하고 있다. 中國(중국)이 大國(대국)이요 天國(천국)이라고 하는 觀念(관념)이 完全(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新羅(신라)도 小國(소국)이요 偏國(편국)이라고 蔑視(멸시)하던 中國(중국)이 도리어 小人之國(소인지국)이요 不仁之君(불인지군)이 된다. 崔致遠(최치원)이 中國天子(중국천자)로 하여금 頓首謝罪(돈수사죄)케 하는 대목에 이르러는 中國民族(중국민족)에게 蔑視(멸시)를 받아오던 우리 民族(민족)의 民族的(민족적)인 雪憤(설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要(요)컨대 이 作品(작품)은 우리 民族(민족)이 中國民族(중국민족)보다 優越(우월)하다는 民族的(민족적)인 矜持(긍지)와 멸시와 抑壓(억압)과 支配(지배)를 받아 온 中國民族(중국민족)에 대한 民族的(민족적)인 雪憤(설분)을 表現(표현)하고 民族精神(민족정신)을 主題(주제)로 한 代表的(대표적) 作品(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음 ‘申遺腹傳(신유복전)’은 主人公(주인공) 申遺腹(신유복)으로 하여금 援明大元帥(원명대원수)가 되어 中國(중국)으로 들어가서 英雄的(영웅적)인 戰法(전법)으로 敵軍(적군)을 擊破(격파)하고 大明(대명)을 危機(위기)에서 救出(구출)케 함으로써 우리 民族(민족)의 能力(능력)과 實力(실력)을 誇示(과시)하였고 ‘李泰景傳(이태경전)’ 亦是(역시) 主人公(주인공) 李泰景(이태경)의 아들 李淵(이연)으로 하여금 援明大元帥(원명대원수)가 되어 中國(중국)으로 들어가서 中國(중국)을 侵攻(침공)한 敵軍(적군)을 擊破(격파)하고 大功(대공)을 세우게 함으로써 우리 民族(민족)의 能力(능력)을 中國民族(중국민족)에게 誇示(과시)해본 作品(작품)이다.

以上(이상)과 같은 小說(소설)에서는 中國民族(중국민족)에게 우리 民族(민족)의 能力(능력)과 實力(실력)을 誇示(과시)함으로써 民族精神(민족정신)을 表現(표현)해본 作品(작품)이나, ‘壬辰錄(임진록)’과 ‘南允傳(남윤전)’은 日本民族(일본민족)에 對(대)한 우리 民族(민족)의 能力(능력)과 志操(지조)를 表現(표현)한 作品(작품)이라 하겠다. ‘壬辰錄(임진록)’은 宣祖朝(선조조) 壬辰倭亂(임진왜란)때 歷史的(역사적)으로 敗北(패배)한 우리 民族(민족)이 小說(소설)의 世界(세계)에서는 反對(반대)로 勝利(승리)한 것으로 表現(표현)하고 또 사명당의 道術(도술)을 통하여 倭王(왜왕)을 골탕먹이고 父子之國(부자지국)의 降書(항서)를 받아오게하고 있으니 이 作品(작품)에서는 民族精神(민족정신)이 日本民族(일본민족)에 대한 우리 民族(민족)의 적개심과 復讐心(복수심)의 表現(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름 ‘朴氏傳(박씨전)’과 ‘林慶業傳(임경업전)’은 仁祖朝(인조조) 丙子胡亂(병자호란)에 입은 滿洲族(만주족)에 대한 우리 民族(민족)의 적개심과 復讐心(복수심)을 表現(표현)한 作品(작품)이다.

敍上(서상)과 같은 李朝時代(이조시대)의 小說(소설)에 나타나있는 民族精神(민족정신)은 우리 民族(민족)의 能力(능력)과 實力(실력)을 다른 民族(민족)에게 誇示(과시)해 봄으로써 政治的(정치적)으로 支配(지배)를 받고 侵略(침략)을 당한 民族(민족)에 대하는 우리 民族(민족)의 姿勢(자세)를 表現(표현)해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民族的(민족적) 文學精神(문학정신)을 日帝植民地時代(일제식민지시대)의 作家(작가)들은 徹底(철저)한 民族主義(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文學精神(문학정신)을 確立(확립)하였음은 贅言(췌언)을 不要(불요)하나 民族(민족)의 獨立(독립)을 찾은 오늘 날에 와서는 어떻게 繼承(계승)해야 하느냐 하는 問題(문제)는 現代作家(현대작가)들의 所任(소임)이다. 다음으로 反抗精神(반항정신)은 ‘雲英傳(운영전)’ ‘洪吉童傳(홍길동전)’ ‘田禹治傳(전우치전)’ ‘春香傳(춘향전)’ ‘彩鳳感別曲(채봉감별곡)’等(등)의 作品(작품)에서 發見(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의 民族史(민족사)를 보더라도 反抗精神(반항정신)은 被配階級(피배계급)에 대한 思想的(사상적)인 姿勢(자세)였다.

被支配階級(피지배계급)의 反抗精神(반항정신)은 政治革命(정치혁명)을 惹起(야기)시켰고 被支配民族(피지배민족)의 反抗精神(반항정신)은 民族(민족)의 獨立運動(독립운동)을 勃興(발흥)케 하였던 것이어니와 封建王國(봉건왕국)이었던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反抗精神(반항정신)이 小說文學(소설문학)에 어떠한 樣相(양상)으로 나타나 있는가하는 것이다.

먼저 ‘雲英傳(운영전)’이란 作品(작품)을 보면 世宗大王(세종대왕)이 第三王子(제삼왕자) 安平大君(안평대군)은 外人(외인)몰래 良家(양가)의 處女十名(처녀십명)을 뽑아 自己(자기)의 宮中(궁중)에 가두고 기르며 장차 姬妾(희첩)을 삼으려고 하거니와 그러나 宮門(궁문) 밖에 나가며는 죽인다는 嚴命下(엄명하)에 拘束的(구속적)인 宮中生活(궁중생활)을 하고 있는 宮女(궁녀)들은 思春期(사춘기)가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反抗精神(반항정신)이 小說文學(소설문학)에 어떠한 樣相(양상)으로 나타나있는가 하는 것이다.

‘雲英傳(운영전)’ 이란 作品(작품)에서는 安平大君(안평대군)의 宮女(궁녀)인 雲英(운영)과 金進士(김진사)가 安平大君(안평대군)의 눈을 피해가며 冒險的(모험적)인 戀愛(연애)를 하다가 發見(발견)되자 雲英(운영)은 安平大君(안평대군)에게 죽음으로써 反抗(반항)하였고 雲英(운영)의 立場(입장)을 同情(동정)하는 다른 五名(오명)의 宮女(궁녀)들도 安平大君(안평대군)에게 思春期(사춘기)에 있는 그들의 解放(해방)을 죽음으로써 呼訴(호소)하고 있으니 이 作品(작품)은 宮中(궁중)으로부터의 解放(해방)을 絶叫(절규)하는 李朝宮女(이조궁녀)들의 反抗精神(반항정신)의 一端(인단)을 表現(표현)해 보았다고 하겠다.

다음 “洪吉童傳(홍길동전)”은 階級制度(계급제도)의 矛盾(모순)인 嫡庶差別(적서차별)과 庶(서)자 防限(방한)에 대한 庶流階級(서류계급)의 反抗精神(반항정신)을 表現(표현)한 有名(유명)한 作品(작품)이요, “春香傳(춘향전)”은 支配級(지배급)의 抵抗意識(저항의식)을 描破(묘파)하였으며 “彩鳳感別曲(채봉감별곡)”은 父母(부모)의 不義(불의)한 處事(처사)로 因(인)하여 蹂躪(유린)당하게 된 人權(인권)을 守護(수호)하려는 한딸의 反抗精神(반항정신)을 表現(표현)하였다.

以上(이상)과 같이 小說文學(소설문학)에 나타난 反抗精神(반항정신)도 前述(전술)한 民族精神(민족정신)과 더불어 日帝(일제) 植民地時代(식민지시대)의 作家(작가)들에 繼承(계승)되어 日帝(일제)의 植民政策(식민정책)에 抗拒(항거)하는 民族的(민족적)인 反抗精神(반항정신)으로 昇化(승화)시켰음은 또한 旣知(기지)의 事實(사실)이다.

끝으로 批判精神(비판정신)은 一八世紀(일팔세기) 英·正時代(영·정시대)의 小說作品(소설작품)에 나타나있거니와 批判精神(비판정신)이 文學(문학)의 主題(주제)가 되게 된 것은 實學思想(실학사상)의 影響(영향)이다. 實學(실학)의 根本思想(근본사상)은 從來(종래)의 모든 制度(제도), 文物(문물)에 對(대)한 反省(반성)과 批判(비판)을 通(통)하여 새로운 民族(민족)의 進路(진로)를 摸索(모색)하려고 한 것이니 一八世紀(일팔세기) 英·正時代(영·정시대)의 作家(작가)들은 實學(실학)의 이러한 批判(비판)을 받아들여 文學精神(문학정신)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批判精神(비판정신)이라 하나의 文學精神(문학정신)으로 昇化(승화)할 때에는 흔히 諷刺主義的(풍자주의적) 手法(수법)을 쓰게 마련이다. 그래서 李朝後期(이조후기)의 小說(소설)은 大部分(대부분) 諷刺小說(풍자소설)의 性格(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朴燕巖(박연암)의 그많은 短篇小說(단편소설)들을 비롯하여 판소리의 臺詞(대사)가 小說化(소설화)된 “春香傳(춘향전)” “興夫傳(흥부전)” “裵裨將傳(배비장전)” “壅固執傳(옹고집전)” “장끼傳(전)” “토끼傳(전)” “卞(변)강쇠傳(전)” 等(등)과 創作小說(창작소설)인 “李春風傳(이춘풍전)” “三仙記(삼선기)” “鳥有蘭傳(조유란전)”等(등)에 나타난 批判精神(비판정신) (諷刺精神(풍자정신))을 보면 첫째 爲政者(위정자)의 無能(무능)과 腐敗(부패)와 橫暴(횡포)를 暴露批判(폭로비판)하고 있고, 둘째 貴族階級(귀족계급)인 兩班儒者(양반유자)들의 僞善(위선)과 虛僞(허위)와 好色的(호색적)인 生活(생활)을 批判諷刺(비판풍자)하고 있으며 셋째 社會(사회)의 不合理(불합리)하고도 矛盾(모순)된 現象(현상)과 人間性(인간성)의 缺點(결점)을 諷刺(풍자), 批判(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批判精神(비판정신)도 日帝(일제)의 植民地時代(식민지시대)의 作家(작가)들에 의하여 繼承(계승)되어 日帝(일제)의 暴虐(포학)한 植民政策(식민정책)을 날카롭게 批判(비판)하는 文學精神(문학정신)을 造成(조성)시켰음도 또한 旣知(기지)의 史實(사실)이다.

以上制限(이상제한)된 面數(면수)를 통하여 國文學(국문학)의 傳統的(전통적)인 文學精神(문학정신)을 小說文學(소설문학)을 中心(중심)으로 하여 摸索(모색)해본 結論(결론)으로 民族精神(민족정신), 反抗精神(반항정신), 批評精神(비평정신)의 세가지를 들어보았으나 萬一(만일)에 이 세가지가 國文學(국문학)의 傳統的文學精神(전통적문학정신)의 客觀性(객관성)을 現代作家(현대작가)들이 어떠한 樣相(양상)으로 되살리고 繼承(계승) 發展(발전)시켜 나갔으면 좋을까 하는 問題(문제)는 다음 機會(기회)에 言及(언급)할까 한다.

(글쓴이·文理大副敎授(문리대부교수)) 金起東(김기동)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