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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으로 배우고 의지로 경험하며 ‘열정의 배’를 띄워라”개교 110주년 특집기획 동국을 만드는 나눔 <3> 신라교역 회장 박준형 (경제 63졸) 동문
  • 이효선 수습기자
  • 승인 2016.05.30
  • 호수 1576
  • 댓글 0

경상도에서 올라와 사투리를 쓰는 것이 부끄러워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묻지 못하던 수줍은 20대 청년은 꿈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부단한 노력으로 원양어업 사업을 세계로 진출시켰고, 후배들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서포터가 되었다. 박준형 동문(경제 63졸)은 신념과 신뢰, 끝없는 도전으로 신라교역을 이끌어온 진취적 리더다.

 

박준형 동문(경제 63졸)은 남이 세상을 바꾸길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변화를 여는 방법을 궁리한 사람이다. 졸업 후 다른 이들이 무역회사에 취직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때, 박준형 동문은 자신이 만든 무역회사를 꿈꿨다. 한 발 앞선 생각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인생을 일군 신라교역 회장 박준형 동문을 만났다.

 

섬유공장부터 원양어업까지 … 도전의 연속

1963년 박준형 동문은 ‘명화직물’이라는 섬유공장을 운영하며 생산된 제품을 동대문시장에 판매했다. 당시에는 제품 선택의 폭이 좁아 물건을 생산하면 판매는 굉장히 잘 되는 편이었지만 원자재가 충분하지 못해 원하는 만큼 제품조달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박준형 동문은 더 많은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아 제품의 생산량을 증대하고자 다짐했다. 수입과 수출에 있어 쿼터제가 적용되어 수출을 해야 원자재를 가져올 수 있었기에 그는 1965년,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동업한 지인과 회사를 운영하며 무역을 배운 박준형 동문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67년 섬유공장을 정리하고 무역회사를 동업자에게 넘긴 후,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가 바로 지금의 신라교역이다. 사업 초기에 주위에서는 “해양에 대해 해(海)자도 모르는 사람이 괜히 달려들다가 망한다”며 박준형 동문을 만류했다.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북태평양에 나가 명태를 잡아와서 국내에도 팔고 가공을 해서 수출을 하고 싶었지만 배를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외환을 확보해나가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가 이후에도 힘든 시기를 이어가자 주위에서는 “더 이상은 힘들 것”이라며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고 흔들릴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준형 동문은 포기하지 않았다.
 박준형 동문은 원양어업 종사자에게 직접 찾아가 술을 사며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다. 외환에 관련해서는 거래은행의 지점장과 식사를 하며 모르는 부분에 대해 배워갔다. 그는 “뭐라도 자꾸 파고 들어가니깐 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며 “배우고 경험하고, 이 같은 노력 끝에 1971년, 처음 한일호라는 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만 있다면 잘 모르던 분야에서도 차근차근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의 경험을 잊지 못한 박준형 동문은 사업에서 큰 수익을 안겨준 초기선단 한일호, 한진호, 한길호, 신한호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신한호의 경우 5천 700톤급의 선박이었는데 그 때 당시 어선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배였다고 한다. 그 안에는 가공하는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는데, 생선을 가공하고 남는 부분으로 사료를 만드는 시설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건 스스로의 행동으로 얼마든지 상상 이상의 놀라운 결과를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결과는 개인의 노력과 행동에 의해 달라진다”고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 ‘믿음’

박준형 동문은 인생의 지침을 한 문장으로 집약해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믿고 살아야 한다. 먼저 믿어야 하고, 배신을 당하더라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그의 신념은 오랜 기업 경영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기업을 50년 가까이 경영하다보면 생각보다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완벽한 경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두고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결국 내가 모자라는 부분은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그 사람을 믿어줌으로서 나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해주고, 받아들이며 함께 가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담당자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보장해주고 간섭은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경영철학을 제시했다. 그는 “전문가가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올바르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을 때, 다른 회사에 뒤지지 않게 더 잘하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한 예시로 신라문화장학재단을 이끌어가는 김인제 교수(본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신라문화장학재단 상임이사)는 지금까지 재단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임하여 완벽히 처리했다”며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좋은 사람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믿음을 주었을 때 배신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회를 이끌어나갈 뿐 아니라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믿음에 대한 신념은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박준형 동문에게서 진심으로 사람을 믿어온, 그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굶어도 직원들 밥은 책임져야
 

2016년 신라문화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장학금을 수여하는 박준형 동문.

박준형 동문에게 기업을 경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묻자 물건을 다 준비한 상황에서 외국 바이어에게 사기를 당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못 주었을 때라고 답했다. 그러나 “회사에 남아있는 직원들을 보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고, 자신이 세운 회사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다시 살려야 된다는 사명감에 일어설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내가 굶더라도 직원들 밥은 챙겨주는 게 윗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말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하는 박준형 동문의 가치관은 확고했고, 직원들을 생각하는 그의 진심이 그대로 묻어났다.
또한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내가 이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해보겠다는 사람은 언제가 되던 반드시 성공한다”며 주인이 된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을 하면 아무리 말단 사원이라도 반드시 주인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덧붙여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분명하게 마음먹고 행동하는데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성공의 여부는 각자의 자세와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학교 발전기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네이밍 된 사회과학관 능금사랑홀.

끝으로 박준형 동문은 꿈꾸는 동국대학교의 후배들을 위해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많은 선배들에게 가서 조언을 받고 이를 참고하라. 방향을 잡아가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후배들이 자기 힘으로 크고 대단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학교에서 배운 모범답안을 그대로 실천한다고 해도 사회로 나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는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인생을 깨닫고 성장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들이 겪을 어려움은 결코 없앨 수 없는 부분이기에 올바르게 극복해야 한다”라고 전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선배들의 역할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사회과학대 능금사랑 박준형홀에서는 우리대학 청춘들의 꿈을 향한 도약이 계속 되고있다. 인생선배로부터의 깊고 넓은 배움으로 우리 학우들의 꿈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이효선 수습기자  arths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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