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이면 스웨덴의 노벨 위원회는 뛰어난 업적을 낸 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한다. 일본은 올해 오무라 사토시 그리고 카지타 타카하키 교수가 생리의학분야와 물리학 분야에서 수상하는 등 그동안 총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고 주변국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편, 중국의 투유유 박사가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중국인으로서 세 번째 노벨상 수상이자 최초의 과학분야 수상이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래, 다른 분야에서도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기다려 왔지만, 결과는 매번 허탈감으로 돌아왔다.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분석한 결론을 보면, “일본은 우리보다 몇십 년 먼저 기초과학기술에 투자했다”,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한다”, “이것저것 만지지 않고 꿋꿋하게 한 우물만 판다” 등이다. 이는 과학의 기본 자세인데 우리는 기본을 놓친 셈이 되어 버렸다.
최근의 신문에서 일본은 “세렌디피티(serendipity; 우연한 발견)를 위해 주류 아닌 연구에 지원한다”고 적은 기사를 접했다. 세런디피티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같이 연구 도중에 엉뚱한 결과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다. 사실은 엄청나게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결과를 얻는 것이니, 우연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열심히 한 자에게 주어지는 “필연의 덤”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우리의 과학 환경을 보자. 그동안 정부는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서, GDP 대비 투자 비율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게 되었다. 국가경제 규모가 세계 십 몇위를 한다니 절대액수에 견주에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행보는 무엇인가?
정부에서는 제한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소위 잘 나가는 소수의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몰아주는 집중화에 골몰해 왔다. 작은 것에 충실하고 세렌디피티를 기대할 수 있는 풀뿌리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연구비를 배분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연구력을 갖춘 소규모 연구자들에게 연구비가 지속적으로 지원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적지 않은 예산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때로는 우리가 노벨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자학하는 면도 보인다.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실망도 초조해하지도 말고 꾸준히 투자하면서 30년, 50년을 끈덕지게 기다려 보자. 사실 우리가 과학기술분야에 제대로 투자해온 시간이 일천하지 않은가. 목표를 낮추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데, 너무 높게 설정하고 성급하게 추진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헛된 공상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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