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세원 학형을 기리며

▲ 박문수 철학과2
 지난 8월 25일. 한 의경이 상관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언론은 ‘장난, 실수, 당일 우울증 약을 먹었던 가해자와 나누어 먹지 않은 간식’ 등을 이유라고 보도했다. 이유라고. 위에 나열한 것들을 이유라고 보도했다. 그렇게 한 청춘의 죽음이 알려졌다. 그러한 이유가 온당한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총을 쏜 박 경위는 ‘장난으로’ 안전 장치를 제거하고 박 상경의 왼쪽 가슴에 실탄을 쏘았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몰랐다.’ 실탄이 들어있는 줄 몰랐던 그에게는 장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경찰의 총기 사용 규정대로였다면, 이른바 매뉴얼이 지켜졌다면 실탄이 격발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26년차 경찰은 총기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비어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있던 실탄은 박세원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경찰이 경찰에게 실탄이 든 총을 겨누고, 심지어 격발시켜 사람이 죽어도 장난이라고 받아들이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권총, 무기다. 장난으로라도 총은 사람에게 겨누어져서는 안 된다. 총은 장난감이 아니다. 옳은 비유인가 수차례 고민하였다. 개구리에게도 돌을 던지지 말라고 했다. 던진 이에게 장난인지 몰라도, 개구리에게 목숨이 걸렸으니 하지 말라고 배웠다. 개구리가 아니고, 사람, 동료 경찰이었다. 돌덩이가 아니고 권총, 빈 총이 아니라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었다. 아직도 그 죽음의 이유가 장난으로 보이는가. 결국 경찰은 박 경위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구속했다. 죽어간 목숨 앞에 미안하다. ‘개구리가 돌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라고 말해온 우리는 위선자다. 던지는 사람 입장에서 장난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회에 제대로 따져 묻지 못하여 미안하다. 경위가 겨누는 총구에 놀라 도망치고 무서워 기며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업무인 의경들에게 미안하다. 의경들에게 권총 겨누기를 서슴치 않았던 박 경위, 그것이 습관이었다면 언젠가 누군가는 그의 총에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그것이 정확한 그의 죄명이 되어야 한다.
이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 되가고 있다. 최전방에서 적군의 총부리에 목숨을 잃어도 억울할 판에 직속상관으로부터 그런 위협을 겪어가며 청년들의 목숨이 끊어지고 저당 잡혀야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생각도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이런 태도가, 방관이 세원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를 기억하려한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를 기억해야한다. 그는 우리 모두의 형이자, 오빠, 동생, 아들이었고, 선배이자, 후배였다. 그의 죽음이 가진 비극은 우리 공동체 구성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모순이다. 그의 죽음은 국방의 의무를 다해온 이들이 겪어온 비극의 한 단면이다. 이제는 이 비극의 굴레를 멈추어 세움으로써 국방의 의무를 위해 청춘을 내놓은 이들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세원이와 같은 죽음이 없어야 하기에 억울하게 우리 곁을 떠난 세원이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따져 물을 것이다. 그는 왜 죽어야 했는지, 이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지 끝까지 물을 것이다. 이 물음만이 무력하고 미안한 우리가 세원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부끄럽지 않은 애도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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