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의 ‘손님’에서 벗어나 ‘주인’으로 거듭나야죠”

 
문화관 지하 2층 소극장 ‘더 블랙 시어터’. 무대가 암전되고 막이 올라간다. 조용한 가운데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첫 대사를 내뱉으며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인 ‘손님’, 김정근 MBC 아나운서(경영 01졸)다. 아나운서의 옷을 잠시 벗고 배우의 옷을 입은 그는 카메라 앞 대신 연극 무대에 섰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늘 약간의 무모함이 따르죠”라고 말하는 그의 도전은 무대 위에서 진정으로 빛난다. 10년 차 아나운서인 김정근 동문은 올해 우리대학 대학원 연극학과에 입학해 인생의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 생활 전부였던 DUBS

김 동문은 2004년 MBC 공채로 입사해 현재 ‘생방송 오늘 저녁’과 축구 중계 등을 진행하고 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학예회 사회를 보는 일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일이다. 김 동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DUBS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그도 아나운서의 꿈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알아봤던 것은 연극동아리였어요. 그러다 장학금이 나온단 말에 솔깃해서 DUBS에 갔는데 시설도 좋고 대학 생활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방송계 이야기도 김 동문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다. 그는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만 2년 동안의 DUBS 활동이라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군기(?)가 엄격했던 DUBS의 하루는 매일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됐다. 김 동문은 “아침마다 ‘동악에서의 아침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어요. 1학년들은 선배들 방송을 모니터하고 메모도 꼬박꼬박 해야 했죠”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집이 경기도 안산이어서 통학이 힘들었어요. 8시 15분에 충무로역에 도착하면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올라가야 했어요”라며 웃기도 했다.
발음, 발성, 읽기 훈련과 모의방송대회 준비까지, 그가 회상하는 대학 생활은 고등학생처럼 꽉 짜인 일정과 엄격한 규율 아래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DUBS에서의 경험은 김 동문에게 값진 자산이 되었다.
“DUBS는 회사의 느낌이 강해요. 직급이 정해져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하죠. 남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할 그런 것들이 저를 아나운서로 만든 자양분이었어요.”

연기는 또 다른 표현의 방법

김 동문은 지난 5월 16일 첫 공연 ‘리투아니아’를 무사히 마쳤다. 누나, 매형, 어머니, 장모님, 장인어른, 아내 이지애 아나운서까지 온 가족이 축하해 주러 왔다.
“6번의 공연 중 3번의 공연에서 제가 시작을 알렸어요. 공연을 끝내고 나니까 아쉬움과 약간의 허무함, 그리고 자신감이 동시에 밀려오더라고요.”
입학하기 전까지 김 동문은 ‘과연 내가 한 학기라도 마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방송 생활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야간근무에 지원한 그는 오전과 낮 시간은 대학원에 다니고 오후 3시 반부터 10시까지 회사에 다녀야 했다. 공연 준비를 위해 퇴근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새벽 2-3시까지 연습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무대에 오른 김 동문은 또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아나운서와 연극배우의 간극을 메워나가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나운서와 연극배우는 모두 표현하고 소통하는 사람이지만 그 방식이 다르기 때문.
“아나운서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와 정보를 취합해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연극배우는 잘 짜인 누군가의 인생에 직접 들어가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에요. 감정을 잘 녹여내서 극대화시켜 보여주어야 하죠.”
김 동문은 “연극무대에서 또 다른 표현 방식을 배운다면 제 표현이 더욱 풍부해질 것 같았어요”라며 “여태까지 해 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라고 강조했다.

멈춰있지 않는 삶을 살아야

이랜드의 동대문점 부지점장 자리를 거쳐 MBC의 10년차 아나운서로, 그리고 연극 ‘리투아니아’의 ‘손님’까지. ‘서른 살 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인 아나운서에 도전했던 그는 이번에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인 연기에 발을 들였다.
방송 10년차 아나운서가 언론 관련 대학원이 아닌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김 동문이 연기에 망설임 없이 도전한 이유는 “누구도 내 자신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뭘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해요. 마음이 정해지면 일단 가보는 거죠. 가는 길이 최선의 길은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해 가다 보면 어디라도 도달해 있기 마련이에요.”
아나운서로서 안정기에 접어든 김 동문은 아직도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꿈이 빈곤해지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현실적 제약에 부딪혀 꿈이 좌절되고 마는 대학생들이 많은 요즘, 김 동문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워낙 어렵고 힘든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하던 그는 그럼에도 “멈춰있지 말고 움직일 것”을 강조했다.
“멈춰있으면 환경에 휩쓸리게 돼요. 자기 자신을 믿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열심히 하다 보면 환경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죠. 확신을 가지고 시도와 노력을 거듭하는 것이 중요해요.”
방송과 연기와 공연예술까지, 김 동문이 꿈꾸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또 다른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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