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에서 사라진 희생의 의미를 되찾자

희생이 사라진 것은 교육의 현장에서도 역력하다. 그 어떤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학교 교육을 통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보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자격을 얻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는다. 대학과 스승들은 그런 경쟁을 팔짱끼고 방조한다. 대학이 사회로부터 부여 받은 지성의 역할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희생은 사라지고 희생물만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희생(犧牲, Sacrifice)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을 위하여 자신이나 자기가 가진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바치는 것이다. 즉 헌신의 표현이다. 인간이 욕망 이상의 존재임을 증명하는 길이다.

개개인의 민주적 가치가 존중되는 이 시대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엇인가의 희생물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취업전쟁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고, 입시경쟁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그 시스템에 의해 희생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남을 위한 헌신은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희생이란 본디 종교 의례에서 비롯됐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제물을 신 또는 자연에 바쳤으나 역사 속으로 점차 사라져간 풍습이다. 희생물은 대개 약한 짐승이거나,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 강자보다는 약한 존재가 제물이 된 것이다. 아직도 곳곳에 희생의 제의(祭儀)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 대속(代贖)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지금은 제사의 효능보다 희생의 정신에 더 주목한다.

지난 시대의 발전 속엔 분명히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이 있었고, 어린 동생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뒷전에 둔 형제도 있었다. 고도성장의 그늘에 희생된 노동자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제는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얼은 눈물을 씹어가며 찬바람 속을 달렸던 지사(志士)와 투사(鬪士)도 있었다.

어느 때부터 희생을 조롱하고 이기고 성취한 자만을 우러르는 풍토가 짙어졌다. 남을 위한 헌신은 어리석은 것이 되고, 타인을 희생물로 삼아 출세와 성공을 하는 일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된다. 자신은 희생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언제든 경쟁에서 뒤처지고 직장에서 밀려날 수 있는 세상이다.

희생이 사라진 것은 교육의 현장에서도 역력하다. 그 어떤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학교 교육을 통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보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자격을 얻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는다. 대학과 스승들은 그런 경쟁을 팔짱끼고 방조한다. 대학이 사회로부터 부여 받은 지성의 역할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의 문턱은 높아졌고 학문은 치열한 입시열기를 볼모삼아 부와 권세를 쌓기에 급급하다. 현세를 풍미하는 자기부정과 자기모멸의 길을 대학도 고스란히 뒤쫓고 있다. 예전 스승들을 떠올리면 희생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으나 지금도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조차 언제부터인가 세속적인 성과에 급급해졌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남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더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 여겨졌었다. 그 인간적인 면모 속엔 희생과 헌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사회와 대학에서 시도되는 대안적 공적교육의 실례는 대학과 지성인 집단이 사회에 지고 있는 책임을 일깨운다.

첫째, TED 등의 공적재단이 벌리는 사회교육이 확산되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최고수준의 지성이 대중들 앞에서 쉬운 언어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전해준다. 오락적인 요소까지 합해져서 과학과 교육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를 통해 사회의 지적 관심이 높아지는 성과를 낳고 있다. 성인 교육뿐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개방교육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교육을 혁신하고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추세이다.

▲ 애플이 제공하고 있는 아이튠즈 U는 전세계의 대학들이 참여해 대학강의나 교육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둘째는 인터넷을 통한 대학교육의 무상개방이다. 애플사의 아이튠즈 대학을 시발로 예술·철학·과학·기술 전반의 강의들이 제공된다. 수십만 개의 교육 콘텐츠가 쌓이고 있다.
최근 미국 사회가 주목하는 또 다른 온라인 교육시스템이 있으니 코세라(http://www.coursera.org)이다. 칼텍, 프린스턴, 스탠포드, 일리노이 대학 등 유수한 대학이 강의내용을 오픈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기초교양과정에서부터 전문적인 학문 분야까지 관심 있는 강의를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 대학 최고 수준의 강의를 개방한 것이다. 짧게는 5주에서 10주 넘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학점 수료를 인정한다. 온라인 교과과정을 또 다른 수익수단으로 보지 않고 학문의 성과를 사회 구성원에게 직접 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였다. 현재 코세라는 교육혁명의 새로운 출발로 주목받고 있다. 대학이 현실을 혁명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대안은 제시할 수 있다.

“교육 받은 이는 만인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우리대학이 자신의 발전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면 적지 않은 반성의 여지가 있다. 대학 자신마저 경쟁 속에 휘말려서 사회적 지성의 생산과 헌신을 목표로 삼지 않은 지 오래이다. 자본과 교수와 학생 수, 캠퍼스의 크기, 논문으로 계량되는 연구 성과를 높이는 일에만 급급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의미 없는 대학서열의 높은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교육의 본질을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오늘 우리의 성공과 안락 속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무한 경쟁에서 쫓겨난 이들의 값싼 노동,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 높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부모들까지. 그 희생에 눈을 감는다면 우리의 자리는 어느덧 야만의 편에 서 있을 것이다.
지난 시대의 교육관 중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이 있다. “교육 받은 이는 만인을 위해 헌신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값진 일로 되돌리는 일이다. 숨은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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