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廷來(조정래), 金初蕙(김초혜) 夫婦同門(부부동문)

  小說家(소설가) 趙廷來氏(조정래씨) (66ㆍ國文科卒(국문과졸))와 부인인 詩人(시인) 金初蕙氏(김초혜씨)(65ㆍ國文科卒(국문과졸)) 夫婦同門(부부동문)이 人氣(인기) 月刊誌(월간지) ‘小說文藝(소설문예)’를 인수받아 이번에 革新版(혁신판) 10月號(월호)를 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영화배우가 감독을 해보고 싶어 하듯이 평소 글을 쓰면서 자신의 손으로 文藝誌(문예지)를 만들고 싶었다는 趙同門(조동문)은 ‘小說文藝(소설문예)’ 代表(대표)로, 主幹(주간)인 婦人(부인)과 함께 힘을 합쳐 알차게 꾸며보겠다고.
  “범람하는 週刊誌(주간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純粹文藝誌(순수문예지)의 格(격)을 조금 낮추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文學(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미니ㆍ북’의 특징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수
  紙面(지면)이 적은 만큼 단 한글자라도 읽어서 소화 될 수 있도록 꾸민다는 자세로 임한단다. 趙同門(조동문)은 讀者(독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에 따라 앞으로는 차차 增面(증면)하여 젊은이들의 發言(발언)도 싣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東國文學史上(동국문학사상) 文人夫婦(문인부부) 同門(동문)으로서는 처음인 이들은 72년도 부부작품집 ‘어떤전설’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저희들은 夫婦文人(부부문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생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쓰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문학을 하는 것이지요.”
 趙(조)ㆍ金(김) 두同門(동문)은 서로 마주보며 異口同聲(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실 전 가정의 주부로서 자유롭게 詩(시)를 쓰지 못하고 있어요. 때때로 훨훨 다 털어버리고 오직 詩作(시작)에만 몰두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여자에겐 가정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살짝 夫君(부군)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金同門(김동문)의 얼굴에 詩人(시인)으로서의 고뇌와 여자로서의 행복감이 언뜻 엇갈린다.

  지금의 젊은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참한(?) 연애를 했다는 이들 부부는 나이는 同甲(동갑)이지만 1年(년) 선후배관계.
  在學時節(재학시절)에는 男女(남녀)가 같이 다닌다고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 東國文學會(동국문학회) 副會長(부회장)을 맡았던 金同門(김동문)과는 필연적(?)으로 함께 다녀야했다고 趙同門(조동문)은 머리를 극적극적.
  요즈음 作品活動(작품활동) 근황을 묻자 趙同門(조동문)은 ‘大藏經(대장경)’이란 장편을 거의 完成(완성)했는데 10月(월)안으로 전집으로 나올 예정이란다.
  “大藏經(대장경)이란 광우리에 經(경)이 하나 가득 들어 있다는, 정말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8만대장경이 만들어졌던 고려 고종 때를 중심으로 썼습니다.”
  침체되는 佛敎(불교)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데 불교를 전문으로 다룬 作品(작품)으로 처음이 될 것. 趙同門(조동문)은 그간 자료를 얻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는데 3개월간 쭉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고. 글이 안 써진다고 해서 술을 마신다거나 하기보다는 오히려 책상 앞에 끝까지 앉아있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趙同門(조동문)은 작가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作家意識(작가의식), 즉 自身(자신)을 알 수 있는 心的(심적)공백을 만들어 그것을 채워 나갈 수 있는 探究心(탐구심)으로 진지하고, 치열한 자세를 가질 것을 당부하고 싶단다.

  “글 쓴다는 것은 영혼을 건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신으로 며칠 밤을 새우며 人生(인생)을 고민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글 쓰는 것을 멋이나 낭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교만을 버리고 자신을 발견하여 혼이 담긴 글을 써야만 하겠습니다.”
  슬하에는 “글이 안써지는데―”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제법 꼬마 文人(문인) 티를 내곤 한다는 5살짜리의 외아들 도현군을 두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