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空間(공간)을 필요로 한다"

  ‘메커니즘’에 의하여 모든 大衆文化(대중문화)가 경직화되고 저질화 되어가는 오늘 날 大衆(대중)을 달래고 만족시키는 劇場(극장)은 연극 存在(존재)의 전제 조건일뿐더러 한걸음 더 나아가 개성이 함몰되어 가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활공간이다. 이러한 劇場(극장) 중 뚜렷한 성격을 가진 소극장이, 서울시가 소극장을 특수공연장으로 허가해 주도록 배려한 현행공연 개정법을 외면한 채 소극장에 영화관, 카바레, 나이트클럽을 대상으로 한 건축법을 엄격히 적용시킴으로써 ‘연극회관 쎄실극장’ ‘삼일로 창고극장’ ‘실험극장’ ‘공간사랑’ ‘중앙소극장’ 등 모든 연극전용 소극장이 폐관위기에 놓였다.

  ‘쎄실극장’과 ‘공간 사랑’은 주거지역內(내)에 위치해 있고 ‘삼일로 창고극장’은 건축법상 대지가 법정크기에 미달하며, 또 ‘중앙소극장’은 동기면적과 실제면적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오는 6월 30일까지 시설 확충을 하지 못하는 한 위의 소극장들이 폐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소극장이라는 말은 본래 대극장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것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소극장은 대극장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상업적 고려를 무시한 채 모든 형식의 연출을 위한 고유의 관객과 배우의 관계를 발견하기 위해 모든 새로운 실험을 행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소극장에서 행해지는 연극을 다분히 실험적 성격을 띠게 되며, 또 실험적 연극을 공연하는데 있어서는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실험적인 극장 내지는 무대를 필요로 한다.
  실험적인 극장이란 무대와 관객석의 兩分法(양분법)을 배제하기 위하여 무대가 존재하지 않는 극장일 수도 있고, 장소가 너무 협소해 모두가 서서 觀劇(관극)을 해야만 하는 극장일수 있으며 또 극장이라는 건물조차 존재하지도 않는 극장일수도 있다.
  이와같은 실험적인 소극장은 젊은 연극인들이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탐구하는 장소로서는 매우 적합한 곳이며, 그들에 의한 여러 가지 실험으로 새로운 극작가, 연출가, 배우들이 배출 될 수 있다.
  또 그들이 갖는 생생한 신선감으로 인하여 정체된 기성연극의 타락을 막고 연극의 새로운 사조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극이 침체기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1915년경에서 1920년대에 걸친 ‘프로빈스 타운 극단’을 필두로 한 소극장 운동은 미국 연극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유진 오닐이 여기에 등장함으로서 참된 미국 연극이 출발하였다. 또 현존(現存) 미국의 대표적 극작가 에드워드·올비의 ‘동물원이야기’가 처음 공연된 것도 조그마한 이 극장인 것이다. ‘창고 극장’대표인 이원경씨는 ‘외국의 경우 신고만으로 지하실, 창고, 트럭 위, 쌀통 등 아무데서나 자기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할 수 있는 데 유독 한국에서만 무대의 크기와 계단, 폭, 의자의 크기 및 위치까지 규정한 공연법과 건축법등 관련 법 규제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라고 당국의 처사를 꼬집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곳이 육교든 길거리든 가난한 연극을 위하여 배우와 관객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거주 공간을 필요로 하며 그 거주 공간이 당국의 건축법에 규제를 받을 때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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