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수해
종강 직전 수해 스님은 내 주소를 몇 번씩 되풀이 물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의 기억 같은 것은 지나버린 해처럼 사라질 즈음 슬며시 책이 하나 배달되었다. 스님이 보냈지만 스님 당신이 지은 책인 줄은 몰랐다. 제목이 “예정된 우연”이다. 그러나 스님은 감사 인사를 받기보다는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의 속편 쓰는 것이 더 급한 듯이 “중앙아시아로 떠나는 길에” 당신 책을 붙여 주고는 홀연 사라졌다.

 동아시아라고 했지만 수해 스님이 다닌 여정은 티베트, 인도, 그리고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 같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에 훨씬 더 많이 쏠려 있다. 그러면서 같은 동남 또는 남부 아시아라도 스님의 발길은 싱가폴이나 홍콩 같이 잘 나가는 지역은 교묘하게 비켜갔다. 이런 나라들은 그 이름들만으로도 빈곤, 전쟁, 그리고 다양한 내부 갈등으로 점철된 팍팍한 인상으로 우리의 숨통을 꽉 조인다.

그런 선입관으로 이 “기행 에세이”의 책갈피를 넘기면서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스님이 손수 찍어 거의 모든 쪽에 적게는 한 장에서 많게는 석 장까지도 실어놓은 각각의 사진들은 너무나 작아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눈을 바짝 대고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사진들에는 약간의 여행지 풍광 외에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마주치거나 거기 살고 있는 인간들의 온갖 모습들이 올망졸망 담겨 있다. 스님은 이들 거의 모든 인간들을 걸어 다니다가 우연히 만났다. 우에노 공원을 울리는 백파이프 소리에 끌려 가 거기에서 연주되는 ‘클레멘타인’을 따라 부르다가 만나게 된 반핵평화운동가 고지와 그 연인 오카무라부터 프놈펜의 병원에 다녀오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오는 배 위에서 만났던 초로의 부부까지.

 그런데 이들 모두는 자기가 살아온 땅에서 모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으면서 몸부림치게 된 사연을 갖고 있다. 스님의 에세이에서 동남아시아 사람으로는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이 캄보디아인 부부도 그렇다.

 이 부인은 1970년대 초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 때 밭에 일하러 나갔다가 미군 병사 4명에게 무참히 강간당한 뒤 “그 때부터 날씨가 조금만 흐려지면 서서히 눈자위가 거꾸로 뒤집히면서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런 날이면 아들이고 남편이고 모조리 미군 병사로 보이는가 보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 빌어먹을 ...”  나는 이 한 마디에서 그 캄보디아 여인의 아픔을 보고도 아파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또 하나의 아픈 마음을 느꼈다.

스님에게는 왜 이렇게 상처받은 사람들만 부딪칠까? 이 에세이에는 호텔 얘기가 안 나온다. 스님은 걸어 다녔다. 그러니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겪으면서 다닌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우연적인 만남들은 남과 북, 동과 서를 가로질러 우리의 휴전선을 비롯해 이 세상의 모든 경계와 한을 풀어내겠다는 스님의 서원 안에서 그렇게 만나리라는 기대를 통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분단은 우리의 아픔에만 마음 조리는 민족통일로 벗어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분단에서 몸소 배운 아픔으로 아시아 도처에 널린 중생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여 “세계가 하나”되게 만드는“우주시민”으로서 우리의 분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스님은 여행을 했지만 기실은 이 상처의 땅들에 필 연꽃들의 씨를 뿌리고 다닌 것이 아닐까?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