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적 언어 구사로 向日性(향일성) 느껴

◇비오는 날 <소설문학 9월호>

朴鎭煥 作(박진환 작)


전철
성내역
무인무료 서어비스 쎈터
우산 빌려주기
비오는 날
物神物神(물신물신)
썩어가는 세상에

物神物神(물신물신)
썩은 비는 내리고
우산으로 받을 수 없는
우리들 가슴은
비에 젖는다.

궂은 장마비가
무시로 내리는
칠월 어느날
비를 피하기 위해
성내역
무료무인 센터에서
나도 우산 하나를 골라 펼친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가 우산속 동행이다.
그것은 무인무료 센터에
아무도 없으면서
누군가가 있음과 같은 이치이다.
物神物神(물신물신) 내리는 비에도
젖지 않는 그 분

비오는 날
젖지 않는분과 만난
가슴은
비아닌 다른 것에
젖는다.

  어느 의미에서는 시적 감동이나 진실은 심오한 환상의 세계 표상보다도 평범한 주제와 소재에서 리얼리티한 진실과 가치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시의 진실과 감동을 더 느끼게 된다.
  그 진실과 감동은 시인이나 읽는 사람에게 자기의 존재와 모든 사물의 현상 상황의식을 확인하고 인식시켜주는 과정이 되며 결과가 된다. 평범하고 단순한 사상(事象)속에 숨어있는 소재를 관조하여 발굴하여 강한 이미지와 감성으로 철학과 사상이 있는 시세계를 창출해 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우리는 그런 類(류)의 시에서 언어의 무의미한 나열과 현학성의 등장, 그리고 안이한 이미지의 표상에다 주제 전개의 조잡성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 한갓 노래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넋두리의 시가 시의 의미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은 명확한 일이다.
  이런 말들을 전제로 해서 ‘小說文學(소설문학)’ 9월호에 발표된 朴鎭煥(박진환)의 작품 ‘비오는 날’은 음미해볼만한 작품이다.
  뜻있는 시인의 사물에 대한 감각과 시점(視點)은 평범, 단순한 소재 속에서 예리한 감성으로 작동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면서 그 쏟아지는 비를 ‘모멘트’로 하여 자기의 이미지와 상황을 상관시켜 표상화 시킨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 비를 낭만이나 감상의 접경으로 보지 않고 축축하고 흐리고 어두운 감성으로 부조리하고 부패한 현실의 치부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비 내리는 성내역에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비가 한갓 감상과 낭만의 비로 비치지 않았고 ‘물씬물씬 썩어가는 세상에 물씬물씬 썩은 비는 내리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썩은 비는 우산으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가슴은 비에 젖고 있는 현실이다.
  현실과 상황의 각박함과 불합리와 부패는 만연되어 우리들 가슴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만들고 있다. 이 語辭(어사)에서 리얼리티한 감성과 감동을 받게 된다. 은유적인 언어구사로 현실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주지적 서정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시는 사물 상황을 관조하고 표상할 뿐이고 사물을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하는 작업이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고 표상함으로써 그 본령의 일부를 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각박한 현실의 삶과 그늘진 실상은 나 혼자만이 생각하고 가슴속에 젖어있는 슬픔이나 아픔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데/누군가가 우산속 동행이다’가 그 실상인 것이다.
  현실과 삶은 우리인생에 있어 명암(明暗)이 있다시피 각박하고 그늘진 삶을 영위하고 있는 가하면, 또 그렇지 않은 현실도 있다. 그런 이원적인 실상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되겠고, 마음속에 젖은 한탄을 털어 놓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이 시인의 잔잔한 마음속에도 사물을 보는 감성이나 내재율을 강하게 느낄 수 있으며 語勢(어세)나 語辭(어사)뒤에 도사린 내용의 간결성이나 조화성을 엿볼 수가 있다. 어둡고 축축한 소재에 비해 우리들 마음이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어떤 계시와 섭리로 향하게 하고 시적 향일성(向日性)을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확실히 어떤 감동과 진실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은 항상 일상성 철학을 체득하고 발양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는 것을 깊이 새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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