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가장 성대한 음악회다.
  화사한 원색의 봄동산을 나는 나비의 율동에서부터 한여름의 폭풍우나 가을의 나뭇잎 소리, 겨울의 날카로운 바람 소리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항상 변화 있는 음색의 하모니를 연주해 내는 음악의 요람이다. 그래서 나는 회색 도시공간을 벗어나 그 음악회에 참석하기를 즐겨한다.
  신록 사이로 비친 햇살이 부서져 금가루를 뿌린 듯 눈부신 맑은 시냇물이 불러 주는 깨끗한 화성의 아카펠라(acapella). 빠른 날개짓으로 나무를 옮겨다니는 피콜로 음(音)처럼 고운 작은 새들의 지저귐. 르룽, 대오케스트라의 팀파니가 배음을 깔고 꽝 심블즈는 힘차게 그 위에 작열한다. 홍시(紅柿)보다 더 선명하게 물든 황혼의 강변에서 알레그로로 바이올린의 E현을 켜는 듯한 갈대들의 귀 비비는 소리. 홍조(紅潮)너머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우아한 비행과 합창. 눈꽃 핀 겨울나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고음의 노래를 차갑게 부르는 <칼라스>. 바람 없는 날 겨울밤의 정적은 음악회를 시작하기 직전의 긴장된 모멘트.
  이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항상 최고의 음 세계를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바쁜 생활 굴레와 자연의 파괴로 인해 쉽게 이러한 음악회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까닭에 자연에 비해 부족하긴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음악세계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된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음악과 더불어 시작되고 끝맺는다. 아침에 듣는 <바하>의 오보에 음률은 생활을 짜임새 있게 하며 <비제>의 미뉴에트를 연주하는 플루우트의 부드러운 저음과 청신한 고음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실안개 낀 뽀얀 전원의 아침을 방안 가득 뿜어 놓는다.
  종일 소음으로 오염된 감각은 비인소년합창단이 건네주는 알프스의 맑은 물소리로 정화되고, 메마른 생활 속에 멎은 듯한 맥박은 대금이 들려주는 선인들의 이야기에 다시 뛰고, <마리아 앤드슨>의 간절한 영혼의 선율 속에 하루를 반성하며 이웃을 이해하고 또 사랑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맺는다. 
  이 같이 음악은 내 생활의 일부로서 도시가 주는 불쾌감을 떨쳐버리게 하고 매일의 생활을 밀고 갈수 있는 저력이 되어주며, 무미건조한 생활내용을 윤택하게 해준다.
  흐를듯 멈추어 있는 끝과 선명하게 빛나는 지휘봉이 확대되어 오는 음악실 벽 위 <캬라얀>의 흑백 사진이 나를 엄숙하게 만들고, 베토벤의 ‘황제’를 연주하는 <박․하우스>의 다문 입과 예지에 빛나는 이마, 그 위에 드리운 백발 그리고 건반 위에서 백파처럼 뛰노는 경이적인 손놀림은 벅찬 감격의 환호성조차 잊게 한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선율엔 소름이 끼친다.
  머리카락이 선다. 활을 움직일 때마다 마력을 지닌 음을 우리에게 던져 뼈 마디마디를 묶어 버리는 것만 같다. 정경화의 몸 전체가 창조해 내는 세계는 과감하다. 역동적이다. 한 음 한 음이 살아서 공간을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나를 또 하나의 파이프로 삼아 바람을 불어 넣고는 공명시킨다. 합창이 만들어 내는 기막힌 어울림 음정은 오금을 졸이게 한다. 그 빛나는 화성과 멜로디는 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리라. 남성합창이 지니는 깊이와 무게, 빈틈없는 화음성은 혼성합창이나 깔끔하고 애조 띤 여성합창이 주는 그것과는 다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호소마냥, 무겁고 농담 짙은 베이스와 트럼펫처럼 경쾌하게, 때로는 구슬프게 번져나가는 테너의 어울림은 멋지다 못해 차라리 내가 그 음이 되었으면 싶다. 그래서 가끔 교내 스피커를 통해 가슴에 와 닿는 병사의 합창은 들을수록 좋다.
  잔물결 치듯 한 트레몰로주법과 단순한 아르페지오가 어울려 만들어 내는 화려한 기타연주는 오히려 우수에 젖게 하고, 기타에 맞춰 부르는 남미의 남성중창은 가만히 한숨짓게 한다. 배뱅이의 처절하기까지 한 노랫가락은 뼈를 녹이고 둥당둥당 가야금 소리엔 한도 많이 맺혔나보다. 장구 소리에 어깨가 절로 움직이고, 덩더쿵 덩더쿵 고수의 장단에 말뚝이도 뛰고 나도 뛰고, 애절한 피리소리에 옷자락이 떨고…내가 떨고…
  음악이 없는 도시공간은 너무 적막하다. 그러기에 남산의 바람은 더욱 건조하기만 하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음악이 서양 음악에 비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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