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20세기 최고의 혜택을 누려왔던 전문기능인(specialist)의 역할은 디지털 지식기반 사회에서 그 입지가 상당히 좁아지고 있다. 오히려 시대정신은 고전적인 교양인으로의 회귀를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근대 서구의 학문 분화 과정으로 인해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창의적 과제 수행이 방해받아 왔다는 고발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지식의 구조와 실재를 끊임없이 분리해온 서구 학문은 결정적인 전환기에 있다. 왈러스틴(I. Wallerstein)이 ‘유럽적 보편주의’에서 서구 학문의 자기 변신 과정을 이른바 ‘과학적 보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비판한 것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트-번스타인 부부(Michèle & Robert Root-Bernstein)가 쓴 ‘생각의 탄생’은 이러한 서구 학문의 조류를 잘 반영하고 있는 책이다. 본래 제목이 ‘천재의 섬광(Spark of Genius)’인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었던 교양인들의 사고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고유한 능력인 창조적 사고에 관한 연구서이다. 비록 우리 범인(凡人)들에겐 부담스런 천재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매혹적인 창조성의 발현을 해명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창조적 성취가 보편적 교양인(generalist)의 사고패턴이기에 새로운 지식의 질서를 찾고자 하는 오늘날에 주는 시사점은 상당히 크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책의 성격이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통섭이론(統攝理論)’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 사고와 지식의 구조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일종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 시도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서구 18세기 천재미학의 전통을 획기적인 발견이나 창조적 사건에 다시 적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예술가,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무엇인가를 아는 지식의 단계(인지 認知)를 지나서 새롭게 느끼고(공감 共感) 실용적으로 만드는 단계(제작 製作)를 성실하게 추적하고 있다. 교육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필자에게 이 책은 독특한 학습 이론을 표방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지금까지 인간의 학습 현상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은 공통적으로, 학습의 과정은 으레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 단순한 지식에서부터 난해한 이론이나 법칙으로 진행된다고 가정한다.

이것이 바로 학습과제이며, 각 학습 과업에는 가르치는 사람의 의도인 교육목표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학습장면에는 비교적 고정된 교육과정, 일련의 계열화된 학습과제 그리고 평가받아야 할 학생이라는 세 요소가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학습현상에 대한 이론화 작업은 대체로 교수자의 의도적 교육목표와 그에 도달하는 학습자의 특성 분석을 일치시키는 ‘모형화(modelling)’ 시도로 나아갔고 기껏해야 학습의 결과를 중심에 두고 역방향으로 학습현상을 설명해 왔다.

반면에 이 책은 창조적 사고의 돌연한 계시와 통찰(洞察)을 전통 철학적 개념인 직관이나 초(超)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유명한 말인, “과학자에게는 예술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가 근거로 인용된다. 대체로 이러한 설명방식은 과학자와 예술가의 사고과정이 놀랄 만큼 흡사(恰似)하다고 가정하고 느낌, 감정, 직관을 중요하게 다룬다.

요컨대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 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학습자는 상상력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고 각자 내면에 깊이 숨어 있는 창조의 본능을 발굴하고 일깨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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