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전이라 하면 해묵은 이야기책이나 옛날 사람들이 쓴 작품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전은 오랜 시간을 거쳐 널리 애독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이에 우리신문에서는 각 학문 분야별로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칸트의 3대 비판서로 불리는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이 세상에 나온 이후의 독일은 그 이전과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18세기경 독일은 유럽에서 정치·경제·문화·학문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칸트의 비판철학, 칸트 철학의 영향으로 성립된 독일관념론, 이와 연관관계에서 형성된 낭만주의 운동 및 질풍노도 운동 등과 더불어 독일의 학문 및 문화는 유럽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칸트의 철학은 이미 그의 생애뿐 아니라, 그의 사후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칸트 자신이 철학 이론을 정립함에 있어 폭넓은 문제의식과 깊이 있는 탐구자세로써 임함에서 기인하며, 또한 철저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에서 결과한다. 칸트 철학의 체계는 크게 자연의 객관적 법칙, 인간 행위의 실천적 법칙, 그리고 아름다움의 법칙 및 우주 전체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루고 있는 3대 비판서로 분류된다.
자연의 객관적 법칙의 정당성을 논하고 있는 ‘순수이성비판’은 칸트의 철학의 방향을 전통적 이론의 전승이라는 역할로부터 완전히 끊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자연과학에서도 자연을 탐구할 때, 자연 법칙은 자연의 ‘사물 자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칸트는 우리의 인식능력으로는 결코 사물 자체의 본질을 인식할 수는 없고 단지 사물의 ‘현상’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고 언명한다. 우리의 인식 능력을 사물 자체에까지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논함으로써 전통적 이성론(합리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칸트는 자신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칸트의 윤리학도 현대 윤리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칸트의 윤리학 이론을 체계화한 책이 바로 ‘실천이성비판’이다. 현대 윤리학을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근본적 이론을 말한다면, 그것은 공리주의적 윤리학과 칸트의 윤리학이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경험적 감정 및 계산적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시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것을 각자 스스로에게 의무로 명령하는 윤리학이다. 이것이 바로 정언명법(定言命法)이다.
흔히 인간의 고차원적인 마음 및 문화를 우리들은 진선미(眞善美)로 구분한다. ‘순수이성비판’이 진의 영역을 논한다면, ‘실천이성비판’은 선의 영역을, 그리고 ‘판단력비판’은 미의 영역을 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아름다움 및 숭고함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논하며, 나아가 아름다움 및 숭고함을 느끼는 마음은 전체로서의 자연의 궁극적 목적과 관계되어 있다. 칸트의 예술철학 및 미학 이론은 근대 미학을 형성·발전시키는 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웬만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독파한다는 것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들에 쉽게 접근하는 길들을 참조하면서 파악을 시도한다면, 그 책들에서 논하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들이 세계를 생각할 때 천착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나아가 현재에도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소재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최 인 숙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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