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시전집

홍신선 시인의 고희기념으로 발행된 ‘홍신선 시전집’은 총 9부로 이루어져 있다.
‘서벽당집’ ‘겨울섬’ ‘우리 이웃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의 여섯 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허기놀’(2003) ‘마음경’(1991-2203) ‘내가 만난 사람들’(1997-2003)으로 나뉘어진 각개의 부분은, 그의 시적 탐색이 진행되어온 연대기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러한 배치의 근원에는 다시 마지막 시편으로 돌아오는 통로가 있다.
1965년 ‘시문학’으로 데뷔한 이후 그의 시는 역사적 현실적 격변과 맞물려 몇 단계의 주요한 시적 변모를 보여 왔지만, 그의 시를 깊이 가로지르고 있는 미학의 뇌관은 “황량한 어느 늪가에서/윤회의 너겁을 들치”던 ‘회귀’, ‘노자(老子)’와 같은 초기시편에서 흐릿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불가나 도가가 강조하는 자연으로의 ‘회귀의식’ 혹은 무위무욕(無爲無慾)의 사유는, 시대적 탐구에 집중해온 7,80년대의 시를 거쳐, “폐기 직전의 500원 니켈 주화에/양각된 재두루미 한 마리” [마음경(經)시24]와 같은 ‘문명적 삶’에 대한 반성과 인간주의적 전망을 관통하며 심화되어왔다.

 특히 ‘마음경(經)’(1991-2003년) 연작 등이 확연히 보여주는 불교적 함축은, 어머니의 살처럼 흙과 물을 먹어치우며 괴물같이 성장한 반인간적 문명에 대한 시적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불교적 사유는 존재의 자연적 바탕인 ‘마음’을 통해, 심원한 우주적 진실을 통찰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 뿌려진 ‘독의 씨앗’과도 같은 역사적/현실적/문명적 상흔의 잔해들을 둘러보며 시인은, 우리가 외면해온 근원적 가치들과 정면으로 마주서는 길을 열어준다.

인간 마음의 근원은 자연의 근원과 같은 것이기에, 그의 시 속에서 자주 엿보이는 “늙은 작부인/지상”(마음경15)에 대한 연민, 혹은 자연과의 교감은, 생의 근거지를 파괴하며 과도한 주체를 구축해 온 자기중심적인 이기성에 대한 반격의 함축을 띤다.
그 이기성은 바로 우리가 뼈아프게 관통해온 7,80년대의 정치적 속성이자 소비주의로 치달았던 우리 문화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음에다 부처님 새기는 길’[불사(佛事)를 하는 절에 가서]을 노정해온 시적 행로는, ‘가장 나중에 지니일 것’[가을 고해(告解)]을 향한 시인의 실존적 염원을 담고 있고, ‘새로운 시작’(혁명)을 위한 근원적 가치로의 회귀는, 홍신선 시인의 아름다운 시혼의 총결산이자 이 척박한 시대에 던져지는 가장 강렬하고 소중한 메시지일 것이다.

허 혜 정
본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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