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동국인을 만나다

▲만해관 행정고시반의 한 학생이 이른 아침부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아침.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청년들이 있다. 동악의 아침에 담긴 얼리버드 청년들의 이야기.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청소근로 학생들과 만해관 행정고시반 학생들을 만났다.

 


각종 과제와 전공서적을 붙잡고 씨름하는 그곳, 중앙도서관.
전날의 뜨거웠던 학구열을 식히는 듯 아침의 중앙도서관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아침 7시가 되자 적막을 깨고 흰색의 마스크를 낀 학생들이 연이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중앙도서관의 아침을 여는 청소근로 학생들이다.
청소근로 학생들은 화장실을 제외한 중앙도서관의 전 구역을 청소한다. 총 15명으로 도서관 각 층당 2-3명이 배치되어 역할을 분담한다. 주로 바닥 및 계단 청소를 하고, 학생들이 공부한 뒤 지우개 가루와 먼지가 남아 있는 책상들을 깨끗이 정리한다. 약 2시간 동안 청소를 한 후 쓰레기통을 비우면서 청소근로 학생들의 아침 일과는 마무리된다.
정지혜(신문방송14) 양은 지난 1년간 매일 아침 조용한 도서관의 불을 켜면서 하루를 시작해왔다. 정 양은 근로를 시작한 후부터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하다 밀려오는 피로에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학생들을 종종 보면서 더 깨끗한 빗자루로 도서관 책상을 쓸게 되더라고요.”
“학생들이 별다른 불만 사항 없이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는 정 양은 내일 아침도 우리 도서관의 우렁각시로 활기찬 아침을 시작할 예정이다.
 

단잠 포기하고 얻는 금쪽같은 생활비

정태규(경영11) 학생의 알람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울려 그의 단잠을 깨운다. 정 군은 벌써 세 학기째 도서관에서 청소근로를 해왔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다. 청소근로를 하면서 이른 아침 시작되는 일상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피로는 점점 누적돼가는 기분이다.
“근로를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죠.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이나 다른 걸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좀 힘들어도 일찍 나와서 청소근로를 하고 있어요.”
정 군을 포함한 청소근로 학생 중 절반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4학년 학생들이다. 평범한 학생들이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바로 ‘취준생’이다.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야 할 시기에 역대 최악의 청년 구직난으로 갈 곳을 잃은 대학생들. 우리대학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른 시간에 빨리 끝나 다른 일과에 집중할 수 있고 여타의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이 높은 도서관 청소근로가 이들의 생활에 보탬이 된다.
정 군은 “취직해서 돈 벌기 전까지는 근로를 계속할 예정”이라며 “취업에 성공해 새벽 5시에 단잠을 이어 잘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좁은 책상 앞에서 피어나는 커다란 꿈

근로 학생들이 청소를 마무리할 무렵, 만해관 4층엔 사각사각 이름을 적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아침 8시, 보통 학생들에겐 여전히 이른 시간이지만 고시생들은 이 시간을 넘기면 지각생이 된다.
만해관 행정고시반의 학생들은 오전 6시에서 8시, 오후 2시에서 5시, 오후 9시에서 오전 12시 사이에 한 번씩 하루 총 3번의 의무 출석체크를 한다. 출석체크에 빠질 때마다 1점씩 감점되고 38점의 기본점수를 모두 잃게 되면 퇴실 조치가 이뤄진다.
이렇듯 엄격한 출석체크 아래 365일, 24시간 내내 고시반 학생들의 치열한 일상이 계속된다. 고된 일상에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에 들어가고자 5급 공채시험을 공부하고 있는 A 군은(경찰행정) “철학과 홍윤기 교수님의 토론 수업을 통해 제가 알던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는 단군 이래 최대 구직난이라는 오늘날, 취업을 위해 무작정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에 A 군은 “의무교육 시절부터 주어진 것만 해결하는 데 익숙해진 학생들이 ‘시키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공무원을 꿈꾸는 것 같다”며 획일화된 개인을 양산하는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출근지가 남극이라도 합격만…’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조용하다 못해 적막까지 느껴지는 만해관 고시반. 그곳의 학생들은 묵묵히 펜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꿈을 위해 한계를 넘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우아한 백조가 잠잠한 수변 아래서 수없이 발버둥 치듯 말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달려가고 있는 이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결승점을 두고 때때로 느려지는 발걸음은 그들도 어찌할 수가 없다. 행정고시반 학생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충 0순위로 꼽았다. 5급 공채시험의 경우, 3차 시험까지 통과해야 최종 합격의 영광을 얻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1년에 걸쳐 진행된다. 이렇게 그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꼬박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워낙 어려운 시험이라 준비 기간이 한 해에서 두 해가 되고 그 이상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시 생활 2ㆍ3년 차가 되면 나름의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경제적 어려움에 성격이 바뀌기도 해요. 4ㆍ5년 차로 넘어가면 5급, 7급, 9급을 같이 준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고시생들끼리는 농담으로 ‘출근지가 남극이라도 좋으니까 합격만 했으면 좋겠다’고들 하죠.”
보장되지 않은 미래지만 함께 가는 길이기에 고시반 학생들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을 낸다. 고시생활로 인해 기존의 인간관계가 부분적으로 단절돼 외로움을 느낄 때도 주말에 모여 취미생활을 하며 활력을 얻는다.
“고시반 내에서는 같이, 함께 가니깐. 누구를 제치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 돕고 의지하기에 버틸 수 있어요.”
내일도 어김없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동악의 아침을 열며 하루를 시작할 청춘들. 이들이 이른 아침 부지런히 시작했던 일상의 결실을 꼭 맺을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당차고 씩씩하게 사회에 진출할 그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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