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길 잃은 양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전국을 휩쓸었던 적이 있다. 정말이지 오늘날의 청춘은 아프다. 서투른 사랑에 상처입고, 고등학교 담장 밖의 사회에 부딪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해 힘들어한다. 그토록 꿈꿔왔던 20대지만 청춘이라는 새로운 세계는 우리들에게 그리 녹록치 않다. 이렇게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이 우리 시대, 우리 사회만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약 100년 전 쓰여진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산시로’에서도 우리와 같은 일본 청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00년 전, 도쿄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였다. 일본의 전통은 사라져가고, 서양의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청춘들이 방황했다. 새로운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화를 거스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지금 우리와 비슷했다.
 산시로는 고향에서 볼 수 없었던 도쿄의 복잡한 전차노선에 허둥대면서도 화려한 건물에 감탄한다. 또 차갑고 낯선 도쿄 사람들의 모습에서 불쾌하고도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졸업생들이 기업에 팔려가기만을 바라는 현실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대학 강의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기도 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좋아하는 여성에게 고백도 못한채 떠나보낸다. 결국 그는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 속에서 ‘스트레이 쉽’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길 잃은 양’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산시로가 좋아했던 여성이 그에게 알려준 단어다. 산시로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 단어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반복한다. 길 잃은 양의 모습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결국 작품은 스트레이 쉽이라고 말하는 산시로의 마지막 대사로 끝난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나름의 동경이 있다. 그러나 막상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 혼란스러워 한다. 오히려 예전의 세계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우리 역시 20살이 되면 청춘이라는 새롭고 멋진 세계가 나타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앞에 나타난 새로운 세계에 혼란스러워하며 다시 예전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된다.
 작가는 그의 또 다른 작품 ‘태풍’에서 이런 말을 한다. ‘성공을 목적으로 인생이라는 길 위에 서있는 사람은 이미 사기꾼입니다.’ 지금 우리 방황의 원인도 여기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오는 고통이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고 그래서 결국 역설적이게 우리는 무엇도 하지 못한다.
 소설의 말미에 산시로는 좋아했던 미네코를 담담히 떠나보내며 의연한 사람으로 한 단계 성숙한다. 우리도 성공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청춘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지금 방황하는 청춘이라면 100년 전 산시로의 모습에서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