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숨겨진 오솔길을 발견하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을 누린다. 그리고 그 일상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를 띤다. 일상은 영화 ‘모던 타임즈(1936, 찰리 채플린)’ 속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하루일 수도, 소설 ‘위대한 개츠비(F. 스콧 피츠제럴드)’ 속 백만장자들의 화려한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형태든 일상은 지루하기 마련이다. ‘일상’이란 곧 ‘반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인,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살아간다. 반복을 통해 삶은 조금씩 무기력해지고 무뎌져 간다. 의미도 없이 일상에서 일탈하는 상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늘어간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오늘도 비슷한 내일이 찾아올 거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려보자. 무의미 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는 없는 걸까?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이라는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장 그르니에(1898-1971)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가로, 리세 알제의 교수를 거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미학을 강의했던 당대의 지성인이었다.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한 작가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기도 했던 장 그르니에는 그의 저서 ‘일상적인 삶’에서 일상을 12편의 에세이, 12개의 단어로 해체해 보여준다. 장 그르니에의 치밀한 사유를 통해 일상의 새로운 면면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자.

‘일상’ 바로 보기

“우리의 일상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행을 하기도 하며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살아간다. (중략) 이 모든 존재 양태들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을 분석해 보면, 일상생활로부터 삶의 결 스타일 자체로 넘어가는, 나아가 예술 작품에까지 다다르게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오솔길이 드러난다.”
책 ‘일상적인 삶’ 속 일상에 대한 사유는 위와 같은 문단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12개의 일상적 단어들을 섬세하게 해체하며 ‘보이지 않는 오솔길’의 입구를 은밀하게 열어 보인다. 여행, 산책, 포도주, 담배, 비밀, 침묵, 독서, 수면, 고독 등…. 저자의 사유를 거친 일상적 단어들은 낯설어진다. 여행은 ‘여행하지 않기 위해 여행하는’ 행위가 되고 침묵은 미덕이 되기도, 결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꼈던 일상의 이면이 밝혀진다.
평소 우리는 일상에 깊은 의미나 긴장을 부여하지 않는다. 일상은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낯익음’을 벗겨내 우리의 평범한 삶이 얼마나 많은 긴장을 숨기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이렇게 일상의 베일이 벗겨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반복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인물이 된다. 바로 ‘산책자’로 말이다.

일상을 향유하는 ‘산책자’

‘산책자’란 독일의 문예학자 발터 벤야민이 제안한 용어로, 목적 없이 군중 사이를 배회하며 냉정하게 관찰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산책자는 자유인인 동시에 사색가다. 그는 항상 주변을 관찰하며 사유하고 수용한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저자는 12편의 에세이 중 ‘산책’편에서 산책이란 목적이 없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산책은 목적이자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목적이자 맹목적인 산책은 우리의 일상에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온다. 산책하듯이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모든 존재와 사건을 향유하고, ‘보이지 않는 오솔길’을 발견하는 ‘산책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산책자의 시선으로 살아가기

책 ‘일상적인 삶’ 속 사유들은 얼핏 보기에 난잡해 보인다. 일상이 가진 수많은 이미지들을 파편처럼 흐트러트려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사유가 보여주는 ‘일상의 뒤집힌 이미지들’은 너무 낯설어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단순한 뒤집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도 든다. 그러나 저자가 뒤집힌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기 때문에 이 책은 의미를 가진다.
“…(전략)…산책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집에 머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정한 산책자로 남는 일보다 더 미묘한 일은 없다. 진정한 산책자는 이렇듯 양자의 ‘사이’에 놓이는 존재이며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이해’가 아니다. 책의 머리말에서 ‘보이지 않는 오솔길’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저자는 우리에게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건네주고자 한다. 그는 사물, 행위, 존재, 내면 등 일상의 면면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분석하며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다. 작가이자 연설가였던 리처드 칼슨은 자신의 저서에 “숲 속에선 숲을 볼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책 ‘일상적인 삶’을 통해 낯익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산책자가 되어보자. 어느 순간 우연히, 당신이 가진 일상의 편린 사이에서 은밀한 오솔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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