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잭… 배가 오고 있어요….”
20세기 로맨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영화 타이타닉(1998년, 제임스 카메론) 속의 대사다. 영화의 말미에서 거대한 배 타이타닉이 침몰하고 주인공 잭과 케이트는 영하 2도의 차가운 북극해 위에서 표류하게 된다. 주인공 잭은 사랑하는 연인 케이트를 살리고 자신은 사망해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된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이다.
우리는 의학이 진보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죽음은 더 이상 미지의 현상이 아니다. 죽음은 이제 생물이 경험하는 하나의 의학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의학의 진보 덕분에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에 대한 질문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누구도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 혹은 가까운 이들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행복하고 밀도 높은 삶을 살고 있다 해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허무해진다. 그런 당신에게 의사 아툴 가완디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툴 가완디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현재는 외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등의 저서를 남긴바 있다.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아툴 가완디는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던, 혹은 알면서도 내심 부정하고 있던 죽음의 민낯을 드러낸다. 아툴 가완디의 고백을 통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죽음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
영화 타이타닉의 예처럼, 우리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죽음을 간접적으로 봐왔다.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깨끗한 침상에 누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아내나 자식의 손을 잡고 잠들듯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희망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답을 한다 해도, 죽음이 상상만큼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내심 알고 있다.
이 때문일까 우리는 죽음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이전까지 누군가 죽는 것을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했을 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우리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성공적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의학, 기술,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손에 우리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평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환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무리한 수술을 받아 수술후유증을 겪으며 죽음을 맞이한 사람, 노환으로 인해 사생활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천천히 죽음을 맞이한 사람 등…. 저자가 풀어내는 ‘현실적인 죽음’은 그동안 우리가 상상했던 죽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끝’을 받아들이는 용기
위와 같이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속에 자신이 목격한 여러 죽음들을 기록해 놓았다. 그중 대다수는 평소 우리가 상상하던 죽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 과정은 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 의사가 자신의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이야기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와 흡사하다.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저자 아툴 가완디의 아버지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했고, 분노했고, 타협했고, 우울해했으며 종래에는 죽음을 수용하고 맞이했다. 그의 죽음은 아름다웠지만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적 죽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자세’를 이야기 한다. ‘끝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더 나은 삶의 추구’가 바로 그 자세이다.
“삶의 이유는 단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거나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됐을 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을 당할 때마다 그리고 심신에 큰 타격을 입을 때마다 우리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야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아툴 가완디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낯선 사건의 베일을 거침없이 벗겨내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플라톤의 대화편 중 하나인 ‘라케스(Laches)’에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장군 두 명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인용한다.
“(대화의 주제는)바로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중략) 이야기는 두 장군이 용기에 대한 최종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끝난다. 그러나 독자인 우리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가능하다. 용기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란 분별력 있고 신중한 힘이다.”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원제는 ‘Being Mortal’이다. 직역하면 ‘필멸자가 되는 법’이다. 이 책은 죽음을 맞이하는 법, 혹은 죽음 앞의 체념을 담은 책이 아니다. 책은 우리에게 ‘필멸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죽음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아툴 가완디의 고백 속에서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보자. 아직 먼 일일 수도 있지만, 그 끝엔 체념이 아닌 성숙함과 현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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