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12인, 눈먼 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다

▲ 눈먼 자들의 국가

지은이: 김애란 외 11명
엮은이: 신형철
펴낸곳: 문학동네

지난 4월 16일 이후로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한마디는 무서운 말이 됐다. 그날, 눈앞에서 배가 기울었고, 죄 없는 목숨들이 기울었고, 사람들의 마음이 기울었다.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202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사건에 휘말려있다. 바로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벌어지는 여야, 유가족, 여론의 공방이다. 이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울고 있다. 말 그대로 눈먼 자들의 국가다.

지난 10월 6일 출간된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이러한 현실을 아프게 꼬집는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계간잡지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실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작가 12인의 글을 엮은 책으로, 발간된 지 4일만에 초판 1만부가 매진된 화제의 책이다.

눈에 익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주제 시라마구 작가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오마쥬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현대 사회의 인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었다면,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눈이 멀어 있는 국민과 정부 그리고 작가 자신들에게 던지는 반성과 질타의 책이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여전히 여론은 들끓고 있다. 이 와중에 세월호 사건에 대해 부정정인 시선을 던지는 이들도 등장했다. 심지어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교통사고이고 희생자들의 사망원인은 익사다’라고 단정하는 자들까지 눈에 띄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눈먼 자들의 국가’의 표지에는 가라앉고 있는 배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말풍선 하나,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쓰여있다. 필자 중 한 사람인 박민규 작가의 말이다. 책 속에서 박민규 작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 강력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친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눈이 조금 뜨이기 시작한다. 사전에 따르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하고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한다.

박민규 작가는 외친다.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이다. 세월호가 가진 두 가지의 프레임, 사고와 사건 둘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가 가진 두 개의 프레임 사이에서, 어느 쪽에 시선을 둘지 모르고 있지는 않았던가. 혹은 ‘사건’과 ‘사고’를 구분 지으려는 노력을 했던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 즉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엄연히 다른 맥락의 이야기다. 바다와 세월호, 그리고 아직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이 희생자들을 직접적인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눈먼 우리들은 그들에게 두 번째 간접적인 죽음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한 수많은 세월호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던 날은 비단 지난 4월 16일 뿐만이 아니었다. 책에 실린 우리대학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황종연 교수의 글을 보자.

“세월호 사건은 1980년 광주 학살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이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한국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한 마디지만 우리 사회의 환부(患部)를 정확하고 아프게 강타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제, 삼풍백화점 붕괴 등 세월호는 이름과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을 수 없이 반복해왔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가만히 있는 자세를 버리지 못했다. 아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슬픔을 보지 않기 위해, 혹은 다른 이유로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닫았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김애란 소설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얼마 전 ‘미개’라는 단어가 큰 논란으로 번졌던 때 그 뜻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이 때 그녀가 찾았던 ‘미개’의 뜻은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과 ‘열리지 않은’ 이 두 가지로, 그녀는 후자의 ‘미개’를 들어 이야기한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귀를 열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는 눈먼 자와 다를 바가 없다. 혹시 나도 눈먼 자들의 일부인가? 작은 의문을 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눈먼 자들의 국가’를 통해 그동안 눈멀어 있던 자신을 자각하고 우리 사회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품었던 질문에 직면해 보자. 그리고 눈을 떠보자.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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