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운 삶’을 찾기 위한 여행의 시작

 
1년간의 세계여행을 위해 1년간의 차곡차곡 준비자금 저축
사무보조,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해 2천만원 모아 
 
2011년 어느 무더운 여름 날, 한 손엔 차가운 오렌지 주스를 다른 한 손엔 노트북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 응시 하고 있었다. 이때의 나는 한창 인생의 회의감에 빠져있었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의욕을 잃어 가고 있던 상태였다.

‘나는 잘하는 게 뭐지?’, ‘내가 하고 싶은 것 은?’, ‘나는 어떤 사람이지?’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학급 회장은커녕 부회장도 해본 적 이 없었고 공부도 특출하지 않은, 어느 학급에나 있을법한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 지 어릴 적부터 특별히 무언가 하고 싶다거나 간 절히 소망하는 꿈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자유의지가 없는 수동적인 따라쟁이가 되 어있었다. 나의 삶을 사는 것 같지가 않았고 그 냥 다른 사람들이 정해주는 삶을 살고 있을 뿐 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인데 왜 내 인생 같지가 않 은 건지, 이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크고 작은 회 의감이 시작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이 옳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어두컴컴한 고 뇌 속에서 점점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어 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의 확신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 했다. 그 때 멍하니 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에 뜬 여행 사진, 나는 어릴 적부터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이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인 생에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으니까.

이때부터 나는 내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 으로 걸어가게 된다. 물론 불안했다. 하지만 남 들과 똑같은 삶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삶 이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게 더 무서웠던 것 같다. 2011년 어느 무더운 여름 날, 그렇게 나 는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나는 바로 휴학 신청을 하고, 세계 여행 자금 모으기에 돌입했다.

이런 저런 정보를 수집해 본 결과 1년간의 세 계일주에 필요한 최저 비용은 약 2000만원, 그럼 1년을 준비한다는 가정 하에 저금해야하는 돈 은 한 달에 약 200만원, 대략적인 계획을 짠 뒤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무보조 일부터 카페 아르바이트 그리고 과 외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했다. 일 주일 내내 쉬는 날이 없었는데, 말이 일주일이지 1년이면 365일 동안 계속 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이 기 간 동안은 카카오톡 프로필에 ‘잠수’라는 대화 명을 걸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줄여버렸 다. 돈을 저축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렇게 1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사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포 기하면서 오직 목표 하나만 보고 간다는 것 자 체가 정신적으로 참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정신을 다잡기 위해 자주 가던 서 점이 있었다. 종종 카페 일이 끝난 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서점에 가면 나는 여행 책자를 하 나 골라 복도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내가 미 래에 가 있을 곳을 보고 읽으며 나를 달래주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는 내가 이곳에 직접 가 있 겠지?’ ‘바로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거 야!’ 비록 1시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간 중 간의 이 시간들이 내 힘들었던 준비 기간을 지 탱해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처럼 이렇게 긴 준비 기간을 추천하지 않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출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어느새 돈 도 꾸준히 모여 목표금액 2000만원을 채우게 되 었다. 첫 여행지인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표는 약 7개월 전에 미리 끊어 놓아서 출발 날짜 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정작 여행 준비는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었다.

솔직히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어떻 게 1년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겠나 싶어, 도착 첫 날 묵을 숙소 예약과 예방접종 그리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까지만 준비하고 그 이상은 나의 운에 맡겼다.

겨우 그 것만 준비하고 어떻게 떠났냐는 이야 기도 많이 듣는데, 정작 1년 치의 계획을 미리 준 비하려다보면 그 범위가 터무니없이 방대해 실 제로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일 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고 이 이상의 준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많이 차 분해졌다. 이렇게 떠나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최 선의 방법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2012년 10월 13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 기에 탑승했고 나의 비행기는 앞으로 펼쳐질 모 험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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