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는 읽지 말라구? ‘내 삶의 목적’, ‘고양이 여행 리포트’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개의 인디언 인형’이 초등학생이던 내게 주었던 충격은 나의 독서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버릴 정도의 메가톤급 충격이었다. 이후 추리소설에 심취해버려, 자극에 노출될 대로 노출된 지금, 웬만한 도서의 내용에는 아예 무감각해져버리는 부작용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감성이 사하라 사막같이 되어 버렸다고 할까. 버석거리는 모래처럼 삭막해진 마음에는 감동이란 것이 좀처럼 스며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건조한 사막에 소나기가 내리면 갑자기 녹음이 우거지듯이, 예상치 못하게 감성의 갑옷이 무장 해제되어 버리는 순간이 있다. 최근에 연속적으로 그런 경험을 했다. 우연찮게 두 번 모두 반려동물과 관련된 책이었다.

 
 강아지의 시선에 풀어본 윤회하는 네 번의 삶 이야기
애견인이라면 한번쯤 돌아보며 읽어보면 좋은 책

‘내 삶의 목적’. 제목이 고리타분하여 그냥 보면 손에 잡히지 않을 한권의 도서. 처음엔 무슨 철학적 인생 설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심한 듯 나를 바라보는 골든 리트리버의 앙증맞은 모습이 나를 끌어당겼다. (애견가에게 우선 어필!)
 
고양이의 품성을 지닌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호기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어느 강아지가 말하는 강아지의 일생, 아니 사생(四生)? 이 책은 부제인 ‘네 번의 삶·단 하나의 사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떠돌이 잡종개가 각각의 생을 마감하고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새로 태어나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해 탐구한다는 내용이다. 트릭도 없고, 놀랄만한 반전도 없고, 내용도 지극히 평범하다.

주인공인 베일리도 명견 래시처럼 특출난건 아니고 평범한 개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중간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서양인인데 윤회사상을 접목시킨 것이 조금 특이하다고 할까.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버르장머리 없는 우리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고 말았다. 흠... 전 세계 애견인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개를 좋아하고, 개고기도 좋아해서 본인은 여러모로 진정한 애견인이라도 했던 분 말씀이 생각난다. 그분이 꼭 읽어보셨으면.

 
길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좋은 가족 찾기 여행
무감각해진 감성 일깨우며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 띠지에 적혀있는 ‘전철에서 읽지 마세요’하는 경고의 문구에 나는 웃어버렸다. 이런류의 책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자신만만하게 책을 펼쳤다. 주인공은 독립심 강하고 사냥 잘하는 똑똑한 길고양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어느 남자의 룸메이트가 되어 5년을 함께 살았다.

착하고 다정한 남자주인공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겨 고양이를 지인들에게 입양시켜야 하는 처지가 된 후, 좋은 집을 찾아주려는 여정을 고양이의 시각에서 펼쳐나간 책이다. 작가는 ‘도서관 전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아리가와 히로. 정말 다정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 왠지 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그런 애련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책 표지와 삽화도 우리나라의 유명한 웹툰 작가 고아라가 수채화 풍의 그림으로 포근한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일조했다. 삽화가에 대한 내용은 책에 자세히 소개가 되지 않아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일본 삽화가의 그림인가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최근에 나의 눈물을 떨구게 하여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아직 완전히 기계인간이 되지는 않았구나’하고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

진짜로 되도록 지하철에서는 읽지 마시길. 물을 마시는 것처럼 너무도 쉽게 술술 넘어가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 못 믿으신다면 한번 도전해 보시길. 연극으로 상연된다고 하는데, 과연 고양이의 내면세계를 어떻게 연기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