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시각장애인 첫 박사 탄생 “앞으로 미국서 비교철학 공부할 것”

 
교수회관 적막한 복도를 지나 들어간 418호는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경험론자인 주자와 선험론자인 칸트 이론을 들어가며 한참 분위기가 고조된다. 토론 주제는 ‘책임은 어디에서 오는가?’ 였다. “잘되면 내 탓이지만, 못되면 남의 탓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현대인의 사고인데 이러한 사고에 기반하면 결국 책임의 소재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에서 온다는 것.”

바로 이번에 동양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장창환 씨의 주장이다. 이 토론은 이번 그의 논문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장 씨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주희(朱熹) 철학(哲學)의 리(理)에 관한 연구(硏究)’.19살때부터 시각장애를 겪어온 장 씨는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대학 대학원에 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장 씨는 점자 단말기와 센스리더(컴퓨터의 프로그램 등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를 이용해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에서 그는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이곳은 편견과 차별이 전혀 없어요”라며 그가 도움을 청하기 전에 학우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줬다고 한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문서를 많이 읽어야 하는데 동료들이 자료를 구해다 주거나 직접 타이핑을 쳐 주기도 했단다. 토론할 때는 발제문을 미리 써와 장 씨에게 넘겨줬다. 그럼 컴퓨터에 이어폰을 끼고 한쪽으로는 발제문을 듣고 다른 한쪽으로는 토론내용을 들으며 같이 참여했다.

장 씨가 보는 세상은 옆과 아래 뿐. 망막세포변성증으로 시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망막세포변성증은 망막의 시신경세포 가운데 흑백과 명암을 구별하는 간상세포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유전성 질병으로 결국 실명에 이르게 한다. 틴틴파이브 멤버였던 이동우도 이 병을 앓고 있다. 고3시절 처음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장 씨는 망연자실 했다. “스스로 시각 장애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시력이 남아있으니 더 힘들었다.” 그는 장차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장애인이라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타인과의 비교, 앞으로 삶에 대한 막막함은 장 씨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학교 수업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던 그를 붙잡아 준 건 다름 아닌 지도 교수였다. 박승희 교수는 방황하고 있던 그를 상담하며 “노장사상을 공부하면 네 인생에 있어 큰 도움이 될거다”라며 “지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상담이후 그는 ‘춘추전기’란 수업을 들으며 노장사상을 간접적으로 공부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24살 때 시각장애인등록을 하고 사회복지사로서 재단에서 활동도 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부인도 만났다. 당시 자원봉사를 하러 왔던 아내에게서 장 씨는 후광을 보았다고 한다. 대화가 잘 통해 좋았다는 그는 자신의 병을 속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아버지의 외도와 이중성에 대해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장 씨의 진심에 결혼에 성공했다. 인터뷰 도중 걸려온 부인의 전화에 존댓말을 쓰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혼 이후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늦으면 다시 공부할 수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며 “불교가 도그마를 거부하기 때문에 동양철학에서 개방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동국대 철학과를 선택했다”는 장창환 씨.

학교를 떠나는 장창환 씨는 ‘비교 철학’을 미국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그는 “논증하고 분석하는 것이 좋아서 비교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려고 한다”면서 유학 선택의 이후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가 끝나면 ‘대중들의 가치관 충돌은 당연하다’는 자신의 논문주제를 바탕으로 읽기 쉬운 철학 교양서적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일반인이 바라보는 세계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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