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血(혈)) 흐름의 아픈 소리가 들린다. 금세 터질 듯 푸릇푸릇 부푼 망우리가 숨쉬듯 고요한데, 맥을 짚으면 팔딱팔딱 힘찬 물줄기의 흐름이 있겠거니….
  봄은 정녕, 선녀의 숨결인 양 고요히 감미로운 호흡에 젖어있다.
  이른 새벽, 물씬한 찐빵처럼, 지상(地上)이 녹아 뽀얀 액체를 대기(大氣)로 뽑아내는데, 사랑의 밀어(密語)를 듣는 것처럼, 대지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
  봄은, 새로운 비약(飛躍)을 보이려는 ‘메커니즘’의 우렁찬 함마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산모(産母)의 진통(陣痛)을 보는 남편의 마음처럼, 뚜렷한 잘못도 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계절인 것이다.
  봄은 시스러움 없는 비약(飛躍)을 말한다.
  이제 나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진달래, 개나리 피기를 기다려 “왜 이제 왔냐”고 얼싸 안고 뒹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연초록 간지러운, 또 무슨 나무인가의 미소를 소리 없이 흘려보내야 겠다.
  나는 봄을 좋아한다. 그래 지금은 사뭇 황홀한 기다림 속에 봄이 뛰어오는 우렁찬, 그러면서도 내임의 그것처럼 달콤한 숨소리를 느끼는 것이다. 피(血(혈))흐름의 아픈 진통을 보는 것이다.
  이젠 무슨 얘기건 봄 아가씨의 포근한 품에서 조잘조잘 지껄이다 따스한 햇빛을 지붕삼아 소록소록 아기처럼 잠들고 싶어진다. 얄밉게도 고운 나뭇잎의 색깔과 그 속에 한 없이 흐뭇해하고 있을 나에겐 봄 아가씨의 포근한 품과 따스한 입김으로 아지랑이를 품어내는 그 황홀한 정경에 취해버리면 된다. 그 순간만은 선녀의 웃음도 나의 행복에 찬웃음과는 비교할 것이 못 되리라.
  태양은 찬연히 사랑을 노래하고, 바람이 살랑 살랑 진달래 개나리 살구꽃 아가씨를 깨워 놓고 지나가면, 앵두나무 이파리랑 어느 나무 이파리랑 바시시 일어나 향그러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수줍음이 과하여 파르르 떠는 그 가녀린 손길은 씩씩한 왕자를 맞이하는 공주아씨의 손처럼 봄은 마냥 보드랍게만 느껴진다.
  검둥이의 번질번질한 피부처럼 기름이 좌르르 흐를 듯한 여름의 나뭇잎과 퇴색해버린 그 누르퉁퉁한 이파리가 하나 둘, 떨어져 가는 가을은 나를 슬프게 했고, 앙상한 가지에 눈보라가 윙윙 몰아치는 겨울은 죽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무서워서 싫다.
  그러나 보라! 당신이 만일 그 봄 아가씨의 포근한 품에서 어린애처럼 소록소록 잠들었다가 “푸드득”무언가 나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고 하자. 아직은 햇볕에 익숙하지 못한 여리디 여린 이파리가 유치원에 처음 입학하는 당신들의 귀여운 동생이나 아들딸의 손목처럼 보드랍게 당신의 눈 끝에 달려 올 것이다. 당신이 혹, 세파에서 힘없는 눈길을 얻었다손 치더라도, 봄 아가씨의 품에서 눈을 떴다면, 파란 하늘이 거꾸로 비치고, 어리디 어린 나뭇잎이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며, 살랑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살구 나무 위에 산비둘기가 꾸루룩 꾸루룩 울기 시작한다. 당신은 이젠 피로한 것을 모두 잊어버린 채로 웃고 있을 것이다.
  (당신도 봄을 사랑해 주십시오.)
  터질 듯 터질 듯 시스러움 없는 초춘부터 봄 아가씨를 맞을 차비를 하십시다. 태고적(太古的)부터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와 조상의 허물을 들추기 전에 여기 우리만이라도 미(美)와 덕(德)과 사랑을 곁들인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합시다.
  태양을 쉬고 지금은 별이 반짝이며 당신에게 행복한 꿈을 드립니다.
  봄이 서걱이는 길목에서 봄 아가씨를 맞이하는 신방의 꿈을 꾸면서 그 보드랍게 피어난 잎과 활짝 피어나는 진달래, 개나리의 웃음을 본다.
  맑고 힘찬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씨앗을 뿌릴 차비를 하면서 희망에 초춘(初春)을 예찬(禮讚)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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