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화사한 봄날 아침이다.
  그래도 가끔 창밖엔 꽃샘바람으로 싸늘한 것을 보면 봄이 완연하기란 꽤나 어려운가보다.
  긴 겨울방학동안 따분한 나날의 연속이 나에겐 아직도 계속되는지 틈만 있으면 졸음이 올 것 같아 학교엘 부지런히 나가보았다. 친구들과 약속을 하였으니 벅찬 마음으로 몇 번쯤은 심호흡을 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계단들을 거의 단숨에 뛰어 오르다시피 하였다.
  봄빛 빛나는 교정에는 앳된 단발머리 아가씨와 뱃지가 유난히 깨끗해 보이는 남학생들이 대부분이다.
  4학년이 된 우리는 어쩐지 좀 소외된 기분인 것 같아 서먹해지기만 한다.
  우리가 일학년때 일이었다.
  토요일 체육시간엔 언제든지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여학생이 모두 한 교실에 모여 체육 실기를 배웠었다. 그때는 4학년 언니들이 어쩐지 너무 어른스러워 보여 우리와 같이 하는 ‘포크댄스’가 어색하기만 하다고 수근 거리면서, 우리는 4학년이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을 골라서 시집을 가버리자고 떠들던 생각이 얼핏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서 친구들과 낯익은 교정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인물평을 하고는 웃고 야단법석을 한참 떨고 보니 꼭 자위를 하기위한 발악인 것만 같아 모두들 시무룩해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짧지 않은 大學生活(대학생활)동안 항시 좀 더 순수한 마음으로 生(생)을 경주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며 무엇인가 自意(자의)에 의한 삶만을 살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다 흘려보낸 날들이 요즘의 솔직한 심정으론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人間(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하는 피조름인 것을 바보처럼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벌써 수강신청이 끝나고 정식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익살맞은 우리반 남학생들이 왜 시집은 안가고 또 왔느냐고 물으니 무어라고 변명을 할까?
  그동안 남녀공학을 한 덕분으로 늘은 것은 처음엔 한마디만 하여도 얼굴이 온통 홍당무가 되던 남학생들의 농담을 이제는 악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의 異性(이성)이라는 감정보다는 같은 학생으로서 허물없이 對話(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영에서 얻는 약간 넓은 識見(식견)이라고 할런지…….
  아무튼 이렇다고 내세울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生活(생활)들, 애써 주워보려다 놓쳐버린 허전한 마음뿐인 것 같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날들에 나는 무엇을 얼마큼이나 안고 돌아갈 것인가. 혹 빈틈만 생기면 비집고 들어올쎄라는 外面(외면)만 해버린 내 사랑의 영역에도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대로 이 봄과 함께 색도 짙은 사랑의 꽃도 피워보아야겠고 또 현실의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면 좀 더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초조한 문제들의 범람으로 난 앞으로 또 몇 밤을 잠 못이루어야 할지 모르는 괴벽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속아온 마음이라 이젠 정말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해야겠다.
  그동안 누적되었던 못다한 감정들을 익어가는 봄날에 속 시원히 요들송이나 부르며 날려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차분히 大學生活(대학생활)의 하루하루를 정리해 가고 싶다.
  (내 쬐고만 눈빛이 살아갈 영역에 神(신)은 얼마만한 인자심을 부여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