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도 육교 위의 병아리 장수는 여전히 병든 상품을 팔고 있었다.
  나는 술 마시고 귀가하는 밤이면 동전을 털어서 병아리 장수에게 내보였다. 그는 언제나 한 마리씩만을 내 손에 얹어주었다. 나는 병아리를 보듬어 안고 조심조심 육교를 내려왔고, 맑은 눈동자와 가냘픈 눈자위를 가로등 불빛에 한 동안 비추어보다가 그것을 우체통 속에 집어넣는 이상한 짓거리를 계속했다. 그런 다음날에는 병아리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꼭 우체통의 문을 열어보았지만 그때마다 병아리는 온데 간 데가 없었다. 세 번 아니면 네 번 쯤 허탕을 치고 나서야, 나는 우체부가 편지를 거둬가는 시각이 오전 10시 정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네 번짼지 다섯 번짼지, 내가 우체통에 병아리를 집어놓고 난 다음날이었다. 나는 정확하게 9시30분에 우체통에 열쇠를 찔렀다. 문이 열린 순간 깜짝 놀랐다. 난데없는 병아리 대 여섯 마리의 병아리가 우체통에서 우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빛 때문인지 병아리들은 맴돌 듯이 움직거리며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삐약 뺙, 쁘약 뺙.
  제법 크게 자란 병아리의 발목에 방위표 모양으로 접혀진 쪽지가 묶여져 있었다. 나는 병아리의 발목에 달린 무명실을 끊고 쪽지를 집어냈다.
  ‘나는 이 우체통을 책임 맡고 있는 J동 우체국 소속의 집배원입니다. 당신은 벌써 네 번째로 짓궂은 학살을 시도했습니다. 연약한 것을 차갑고 어두운 철갑 속으로 집어넣는 행위가 그것입니다. 처음 나는 당신의 잔학무도한 행위에 대하여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네 번씩이나 똑같은 일을 해 놓는 사이에 차차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우체통의 문을 열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병아리를 집어넣고 난 다음날의 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밤새 갇혀있던 병아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지를 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병아리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말입니다. 나는 당신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다섯 번째의 실험물을 투입해 놓기 전에 지금까지 당신이 장치해 놓았던 네 마리의 실험기구를 반납합니다.
  허지만 당신의 실험 방법에 작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 실험물에게 일정량의 모이와 수분을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우리 역시 하루 세끼의 쌀밥과 보리차는 꼬박꼬박 찾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통 안에는 내가 어젯밤 다섯 번째로 집어넣은 것을 합친 다섯 마리의 병아리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플라스틱공기가 두 개 놓여있었는데 그것들에는 물과 가루모이가 각각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후로 매일 같이 병아리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을 삼았다. 우체부는 물을 매일 새것으로 갈아 놓음으로써 자신이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병아리들에게서 아무런 이상을 찾아낼 수 없었다.
  빠약, 뺙, 쁘약 빡.
  우체통의 문을 열 때 마다 병아리들은 똑같은 소리로 울어댔다. 제법 생기 있는 울음소리 였다. 그런데 모이가 반쯤으로 줄어들었을 무렵부터는 문을 열어도 병아리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게 되었다.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모이는 좀 체로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병아리들은 언어와 식욕을 함께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완연하게 시들어진 병아리들의 움직임을 보고 또 한 차례의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것들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급기야 병아리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죽었습니다.-
  나는 우체부의 짤막한 쪽지를 대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이와 물을 신선한 것으로 갈아주었다. 물은 J동의 약수터에서 받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우체부는 또 다시 짤막한 쪽지를 접어놓고 말았다.
  -또 죽었습니다.-
  나는 동대문에서 가축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다. 통사정 끝에 그를 우체통 앞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친구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참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말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친구는 병아리들에게 일일이 영양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병아리들이 생기를 보인 것은 불과 며칠뿐이었다. 다시 병아리들은 시들시들해지고 있었다. 내가 우체통의 문을 열어보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며칠 후 나는 우체부에게서 예전보다 약간 길어진 쪽지룰 받았다.
  -또 죽었습니다. 이제 두 마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책을 강구해야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또 다시 하루 진종일을 이부자리 위에서만 보내는 생활을 계속해야했다.
  타앙, 탕, 트앙, 탕.
  차차 커지는 주위의 소음 때문에 총 소리는 필경 작아지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들의 한방 한방은 이제 내 머릿속을 징소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아스피린을 몇 알 더 먹어볼 양으로 책상위로 손을 뻗었다. 순간 ‘탁’하고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惠(혜)의 사진액자임을 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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