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조동종 이치노헤 스님, 한국 찾아 일제 만행 고백

 
지난 4월 2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침략이라는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진 바가 없다”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같은 날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68명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집단 참배 행사를 가졌다.

국회의원이 전범을 기리고 총리가 침략을 부정하던 와중에, 한 일본인 스님은 한국을 찾아 식민지 시대에 일본 불교가 행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고백했다.
지난 4월 10일 이치노헤 쇼코(一戶彰晃) 스님은 일제의 조선 침략과정에서 일본 불교 최대 종파인 조동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조선 침략 참회기(동국대학교 출판부)’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지난 4월 20일부터 9일간 한국을 방문해 100여 년 전 일본 조동종의 만행을 사죄하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 불교에 일침을 가했다.
스님은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불교에 “침략을 묵인하고 나아가 일조했다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다”며 비판했다.
스님은 조동종이 제국주의의 만행을 저질러온 자료를 수집ㆍ저술해 이번 책을 펴냈다. 지난해 9월에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 조동종이 일제 침략시 과오를 반성하는 내용의 참사문비를 세우는 등 일본 불교계의 부끄러운 역사를 폭로해 왔다.

 
이번에 발간한 ‘조선 침략 참회기’에 언급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고, 구체적이다. 조동종 승려들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물론 1895년 명성황후 살해 사건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한다. 또 1910년 한일강제병합 때 조동종 전 사원에서 축하법요를 봉행했던 사실도 기록돼 있다.
흥미롭게도 책에는 우리대학과 관련된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다. 지금의 만해광장 자리에는 조동종 경성 별원이 있었고, 현재 그 건물은 정각원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 장충단공원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호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박문사가 세워졌다는 사실도 책에 언급돼 있다.

책에는 이치노헤 스님이 우리대학을 방문했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다. 스님은 지난 2011년 우리대학 김호성 교수(불교학부)를 만나 우리대학 캠퍼스와 각종 불교 자료를 둘러봤다.
김 교수는 스님에게 보사노바, 랩 등 젊은 감각이 녹여진 불교음악 CD를 선물했는데, 스님은 ‘한국 불교의 자신감’이라며 감탄했다고 저술했다.
또 스님은 김 교수의 저서인 ‘일본 불교의 빛과 그림자’를 꼭 일본어로 읽어보고 싶다며 “한일 양국의 불교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근대사를 정리함으로써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책을 통해 언급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책 말미에 ‘동아시아의 근대 불교사는 현재로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과거 불교계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 곧 동아시아 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다.
또 이번 한국 방문 중 가진 인터뷰에서 스님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재로 사용돼야 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왜곡되지 않은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의 그릇된 역사의식 문제가 다시 대두되는 요즘, 이치노헤 스님처럼 자신들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고 참회하는 용기와 양심이 아직 일본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한ㆍ일관계의 한 줄기 희망으로 기대를 모은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