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따뜻한 손길조차 피해지는걸요. 모두 모두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에요.” (제발 그런 소리 말래두) 그는 어느새 일어나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 있었다. “2년간 주욱 생각해온 거에요. 나를 송두리째 알아버린 나는 자신에 대한 모멸과 공포뿐이에요.” “.....”
  그는 또 축 처지는 그런 기분에 비틀거렸다. 포기일까, 무기력한 방관일까, 이젠 어느 얘기도 준비할 수가 없었다.
“그간 너무 감사했어요. 이젠 저를 찾지 마세요.” 그녀는 기석의 팔을 두 손으로 내리고는 차도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희미한 불빛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걸어가는 그녀에 멍하니 시선을 두고 있었다.‘
  기석인 S일보사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대학신문기자인 그는 S일보 외간부에서 조판을 하는 토요일이면 층계에서 머리칼이 긴 그녀와 마주치곤 했다. 깊숙이 울음을 씹는 얼굴이지만 언제나 웃고야마는 그녀에게 눈길이 가졌고, 끝내는 접근을 했다.
  그녀는 그와 만나는 횟수가 빈번해지면서 그 따뜻함에 생을 역행하려던 태도를 일시나마 바꾸게 되었지만 고쳐질 수 없는 마음의 병은 끝까지 그녀를 옴싹을 못하게 했다. 다감한 석이, 그러나 그녀는 일치할 수 없는 평행선일 뿐이라고 생각키워졌다.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단정해버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는 그렇게 믿었고 또 실상 그녀의 심경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 그 핏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학을 안 보내줬다는 이유에서만도 아니었다. 위궤양이라는 병이 그녀를 병적으로, 아주 외곬으로 흐르는 고집쟁이로 만들은 것이다.
  기실 그 병명도 확실한 것도 아니었다. 의사의 진찰결과마다 달랐는데 그녀는 영 고치기 어렵다는 위궤양쯤으로 믿어 버렸다. 바마다 배에 통증을 느껴 울며, 신음소리를 죽이느라 신경은 차차 날카로워져 갔다. 한 곳으로 흐르는, 말하자면 자신을 비관하기 시작하고는 일체를 삐뚤게 보는 것이었다.
  연숙의 외고집은 결국 비관에서 온 것이었는데, 쉽사리 고쳐질 수는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저 스물하나의 여자라는 여린 마음에서 오는 그런 손쉬운 현상은 아니었다.
  기석으로서도 만난 지 몇 달이 지난 뒤 알아낸 일이었다. 건강을 회복하려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만날 적마다 말은 하지만, 기실 소용없는 것이란 걸 이미 느끼고 있었고, 또한 그런 말을 되풀이하는 자신까지도 피로에 질려있는 것이었다. 매사에 별 새로운 것이 없이 그저 타성으로 움직이는 그는 모두가 싫증이 났고, 그네에게 고향에 돌아가라는 얘끼도 별반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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