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별로 ‘베스트·텐’을 권한다


  요즈음 ‘매스컴’에선 ‘베스트·셀러’를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말하자면 ‘선전’효과를 탄 서적들이 ‘良書(양서)’처럼 활개를 치고 있다. 讀書(독서)에는 무엇보다도 윗사람이 권하는 ‘읽을 價値(가치)가 있는 책’을 택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 선전된 ‘베스트·셀러’에만 의존해선 위험하다. 각 부문별 독서의 방법과 良書(양서) ‘베스트·텐’을 소개한다.

哲學(철학)서적
省察(성찰)과 思索(사색) 이끄는 길잡이
先哲(선철)의 勞作(노작)살펴 발자취 體驗(체험)해야.

  사람은 누구나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애절한 悲願(비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삶을 보람 있는 삶이라고 여기는가에 관하여는 사람마다 소신이 한결같지가 않다. 부귀나 권세를 누리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청빈 속에 自適(자적)하는 티 없는 삶에서 보람을 찾는 사람도 있고, 현실적인 삶에서만 보람을 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영원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데서만 끝없는 보람을 느끼는 이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삶의 태도는 각기 그 사람 나름의 인생관·세계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기에, 과연 어느 태도가 정녕 보람 있는 삶인지 한마디로 그 優劣(우열)을 속단하여 버릴 수는 없을성 싶다.
  그러나 어떠한 인생관·세계관이건 만일 그것이 삶에 대한 내면적 省察(성찰)과 세계에 대한 성실한 思索(사색)을 논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한 낱 ‘氣分(기분)’의 所致(소치)에 불과한 것이요 결코 전 생애를 걸고 固守(고수)할 수 있는 삶의 원리가 될 수는 없다.
  진정으로 보람이 있는 삶- 그것은 오직 스스로 깊은 省察(성찰)과 思索(사색)을 하여 확립한 인생관·세계관에 따라서 살아가는 데서만 성취될 수가 있다. 물론 이 省察(성찰)과 思索(사색)이란 부질없는 공상이나 망상을 일삼는 것이 아니요 인생과 세계의 深厚(심후)를 꿰뚫어 보고 그 참된 모습을 들추어냄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省察(성찰)과 思索(사색)이 한갖 空想(공상)으로 그쳐 버리지 않기 위하여는 이 省察(성찰)과 思索(사색)을 이끌어 주는 적절한 길잡이가 필요하다. 先哲(선철)들의 不朽(불후)의 勞作(노작)을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은 所以(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勞作(노작)들이야 말로 先哲(선철)들의 省察(성찰)과 思索(사색)의 발자취요 투철한 인생관·세계관을 확립시켜 간 敹知(요지)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 아닌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 先哲(선철)들의 사상 따위는 알아서 무엇 하랴고 생각됨직도 하다. 과연 우리가 찾는 것은 ‘나’ 자신의 삶의 원리이기에 아무리 위대한 哲人(철인)의 인생관·세계관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것을 그대로 모방·추종할 필요도 없고, 또한 그리 하여서도 아니 되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역사가 소중한 遺産(유산)으로 받들고 있는 先哲(선철)들의 勞作(노작)을 ‘나’만이 외면하고 무시하여 버린다면, 이는 분명 자기 이상의 哲人(철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傲慢(오만)의 所致(소치)가 아닐 수 없다.
先哲(선철)들의 勞作(노작)은 그들이 인생과 세계라는 前人(전인)未踏(미답)의 가시밭을 뚫고 나간 ‘길’들이다. ‘나’만이 갈 길도 이미 뚫려있는 이 길들을 따라가며 살펴볼 때 용이하게 개척될 수가 있지 않을까? 이 길들이 없었던들 우리는 처음부터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야만 하는 끝없는 勞苦(노고)를 면치 못하리라. 그러기에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아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우선 先哲(선철)들의 勞作(노작)을 면밀하게 펴보고 그들의 깊은 省察(성찰)과 思索(사색)의 자취를 뒤쫓아 체험해 보아야한다. 그리하는 동안에 아련하게나마 자기의 갈 길에 비춰오게 될 것이다.
□哲學(철학)베스트·텐(西洋哲學(서양철학)部門(부문))□
▲딜즈 ‘스크라테스이전단 편집’ (Fragmente der Vorsokratiker) ▲플라톤 ‘파이돈’ (Phaidon)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Metaphysika) ▲아우구시티누스 ‘신국론’(De civitate Dei) ▲데까르트 ‘성찰록’ (Med itationes) ▲흄 ‘인성론’ (A Treatise of Human Nature)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헤겔 ‘정신현상학’(Pha “nomenologie des Geistes) ▲훗셀 ‘논리학적연구’ (Logische untersuchungen)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에세이 集(집)
人生(인생)의 참된 眞實(진실) 담겨있어
부담 없이 읽어도 作者(작자)의 意圖(의도)살펴야

  대체로 에세이는 아무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데 長點(장점)이 있다. 같은 讀書(독서)라 해도 歷史(역사)書籍(서적)이나 哲學(철학)書籍(서적) 혹은 科學(과학)書籍(서적)같은 것은 읽어서 첫째에 내용을 파악해야하고, 그에 대하여 적당히 자기의 判斷(판단)을 내려야한다. 그런 책을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읽는다 해도 行(행)마다 페이지마다 讀者(독자) 자신의 상당한 知的(지적)努力(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읽는 사람에게 부담이 간다.
  그러나 ‘에세이’는 그것을 읽고서 거기에서 심각한 문제를 찾아낸다던지, 읽는 과정에서 內容(내용)의 論理性(논리성)을 추구하기에 힘이 든다던지 하는 일이 적다. 글을 쓴 사람 자신이 대체로 가벼운 마음으로 ‘想(상)가는데 따라’ 비교적 마음 편히 쓴 글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아주 힘 안들이고 읽을 수 있는 것이 ‘에세이’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에세이’가 이것저것 ‘想(상)’을 주어모아 目的性(목적성)도 論理性(논리성)도 없는 글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떻게 말하면 論說(논설)하고자 하는 目的(목적)과 要旨(요지)를 뚜렷이 그리고 조리 있이 表面(표면)에 나타내는 哲學(철학), 歷史(역사), 科學性(과학성) 等(등)과는 달리 그 目的(목적)과 要旨(요지)를 완전히 解體(해체)시켜 눈에 띄지 않게 하고서 그것으로 주장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아무리 부담 없이 가볍게 읽는다 해도 著者(저자)의 意圖(의도)를 살피기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야기가 일상 身邊(신변) 雜談(잡담)이라 할지라도 著者(저자)는 반드시 그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인가 말하고자 했을 것이니 讀者(독자)는 그 ‘무엇’을 紙背(지배)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읽었을 때 비로소 에세이의 效用(효용)이 있는 것이다. 그 效用(효용)을 달성할 경우에는 사실상 한편의 隨筆(수필)이 한 권의 哲學書(철학서)의 구실을 하기도 하고 한 時間(시간)의 讀書(독서)로 人類(인류)萬古(만고)의 眞理(진리)를 터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隨筆(수필)이라고 해서 거저 身邊雜談(신변잡담)만을 늘어놓은 글은 隨筆(수필)과 구분해서 漫筆(만필) 혹은 雜筆(잡필)이라고 불러야 할 줄로 생각한다. 이야기의 素材(소재)와 着想(착상)은 반드시 身邊(신변)逸話(일화)에서 택해야 하겠지만 그 素材(소재)를 선택, 排列(배열)해서 무엇인가 高次元(고차원)의 意味(의미)를 찾아내도록 해야만 비로소 수필의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저자의 圓熟(원숙)한 人生(인생)經驗(경험), 透徹(투철)하고 銳敏(예민)한 人生觀(인생관)照(조)의 炯眼(형안), 그리고 老鍊(노련)한 表現力(표현력) 등이 수필의 必須條件(필수조건)이다. 그런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隨筆(수필)책을 고를 때에는 人生(인생)의 經驗(경험)이 淺薄(천박)한, 感多性(감다성)이 무딘, 그리고 文章力(문장력)이 雉(치)세한 사람의 것을 피해야한다.
  그러기에 定評(정평)있는 筆者(필자)의 古典的(고전적) 가치가 있는 책을 추천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에 비교적 古典的(고전적) 가치가 있는 에세이 베스트 텐을 열거해본다.
□에세이 베스트·텐□
▲몽떼뉴 “隨想錄(수상록)” ▲프란시스·베이컨 “에세이스즈” ▲찰스·램“엘리아 隨筆集(수필집)” ▲조지·깃씽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手記(수기)” ▲A·A·밀른 “隨筆集(수필집)” ▲金晉燮(김진섭) “聘川(빙천)隨筆集(수필집)” ▲金晟鎭(김성진) “隨筆集(수필집)” ▲이양하 “隨筆集(수필집)” ▲咸錫憲(함석헌) “隨筆集(수필집)” ▲柳達永(유달영) “人生(인생)노오트”
李昌培(이창배) <(文理大(문리대) 敎授(교수))>

文學(문학)서적
책에서 모든 人間(인간) 만날 수 있어
文學(문학)은 人生問題(인생문제) 해결해줘

  사르트르는 文學作品(문학작품)을 ‘거울’에다 비유했다. 한편의 小說(소설)을 읽는다든가 詩(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치 거울에 自己(자기)모습을 비춰보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거울 속에 자기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人間(인간)의 비극은 自己(자기)가 自己(자기)얼굴을 볼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 따라서 自己(자기)가 自己(자기) 얼굴을 볼 수 없는, 마치 暗號(암호)와 같은 존재는 스스로 속에 영원한 ‘他者(타자)’를 느끼기도 하고 끝없는 有形(유형)地(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거울’앞에 서면 그 속에서 自己(자기)와 같은 他者(타자)를 본다. 그렇다면 文學作品(문학작품)이란 거울  속에서 讀者(독자)는 무엇을 보며 누구를 만나는 것일까? 그속에서 한 作家(작가)가 창조한 숱한 人物(인물)들을 만나며 그들의 對話(대화)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他者(타자)들의 體驗(체험)과 思想(사상)을 통해서 世界(세계)를 의식하고 自己(자기)를 의식하게 한다. 한편의 作品(작품)이 주는 共通感(공통감)(IA리차즈의 용어)는 讀者(독자)로 하여금 自己(자기)를 意識(의식)케 하고 행위에다 끝없는 쇼크를 준다. 또한 作品(작품) 속에서 만나는 人物(인물)로 해서 모든 人間(인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세계 속에서 모든 人種(인종)을 만날 수가 없다. 美國(미국)의 黑人(흑인)이나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구라파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설사 세계를 一環(일환)한 旅行家(여행가)라 할지라도 世界(세계)의 人種(인종)을 모조리 만난 것은 아니다. 불과 몇 사람을 그것도 수박 겉핥기로 만났을 뿐이다. 世界地圖(세계지도)속의 地球(지구)의 곳곳이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美國(미국) 作家(작가)들의 小說(소설)에서 모든 계층의 美國(미국) 사람을 불란서作家(작가)의 小說(소설)에서 모든 계층의 불란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人生(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스럽게 엿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文學(문학)은 世界(세계)의 敎室(교실)이다. 그 교실에 들어가면 누구도 만날 수 있다. ‘세익스피어’,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멜빌’- 단돈 몇 백원을 주고 그들이 지은 小說(소설) 책을 사서 읽기만 하면 그 世界的(세계적)인 文豪(문호)들의 강의는 공짜로 들을 수 있다.
  시시한 강의가 아니라 世界的(세계적) 文豪(문호)들의 權威(권위)있는 강의는 얼마나 값싼 일인가.
  경제학과 강의실에 들어가면 經濟學(경제학) 이외의 강의실에선 人生全般(인생전반)에 관한 강의는 하지 않는다. 數學科(수학과) 아닌 學業(학업)을 배울 뿐 英文(영문)과에선 英文學(영문학)을 배울 뿐 다른 分野(분야)는 배울 수 없다. 결국 大學(대학) 4년의 과정을 전부 마친 다고 해보아야 한편의 小說(소설)에 담긴 얘기정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 한편의 小說(소설)속엔 人生(인생)에 관한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數學者(수학자)의 公式(공식)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민이 담겨져 있다. 결국 사람은 무슨 職業(직업)을 갖고 살든, 그는 죽음 앞에서 한정되어있고 그만치 일정한 시간을 살뿐이다.
  죽음과 마주선 모든 人間(인간)의 문제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세계를 이탈해서 存在(존재)할 수 없는 限界(한계)點(점)에서 언제나 實存(실존)의 문제를 제기시킨다. ‘까뮈’는 당돌하게 현대 哲學(철학)의 문제는 人間(인간)한테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文學(문학)은 그 문제를 제 나름으로 풀어준다. 따라서 여러분은 文學(문학)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大學(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배우게 될 것이다.
이철범(文學(문학)평론가)
□文學(문학)書(서) 베스트·텐□
“일리아드·오디세이”(호메로스) “아라비안·나이트”“神曲(신곡)”(단테) “햄릿”(세익스피어) “돈키호테”(세르반테스) “失樂園(실낙원)”(밀튼) “파우스트”(괴테) “罪(죄)와罰(벌)”(도스토옙스키) “戰爭(전쟁)과 平和(평화)”(톨스토이) “人間條件(인간조건)”(말르로) “異邦人(이방인)”(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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