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코미디로 극장가를 사로잡은 남자, 영화감독 김주호(연극영화 00졸)동문 인터뷰

 
올 여름은 그야말로 ‘영화 풍년’이었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거미 아저씨가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 잘생긴 배트맨 아저씨가 나오는 ‘다크 나이트’, 1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 ‘도둑들’까지. 이같은 대작들 틈에서 도전장을 내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 는 약 5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코미디 사극’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로 데뷔 첫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신인 감독 김주호(연극영화 00졸) 동문. 그의 영화 이야기와 인생관 그리고 학창 시절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64:1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김 동문은 고3 시절 주저없이 연극영화학과(이하 연영과)에 지원했다. 당시 우리대학 연영과의 경쟁률은 전국 최고인 64:1. 33명을 뽑는 데에 약 2천명의 지원자가 몰린 셈이다. 그는 자신이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합격하였다. 어렵게 합격했기에 연영과 생활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던 기억은 영화를 찍었던 일들이다. 영화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작업하는 것이다 보니 그 안에서 싹트는 우정과 공동창작의 희열 같은 것들은 그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실제로 그는 대학교 1학년때 친구들과 군복, 군화, 총 그리고 포탄 등을 준비하고 남산에 가서 ‘월남전’을 찍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때의 무모한 시도가 그에게는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연영과인만큼 많이 혼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 혼나는 것마저 좋을 만큼 연영과는 그의 생에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이었다.

잊지 못할 선배들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했다는 연영과 재학시절, 그에게는 잊지 못할 특별한 동문들이 있다. 그는 먼저 유준상 동문을 꼽았다. “준상이 형이 연영과 학생회장이었어요. 그때 제가 학생회 임원으로서 옆에서 열심히 보좌한 기억이 나네요.” 그 다음으로 고현정, 김혜수, 채시라 동문을 차례로 언급했다. “고현정 선배는 정말 고운 피부에 훤칠한 키, 그야말로 여신포스셨죠. 정말 얼굴이 너무 하얘서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였으니까. 김혜수 선배는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어요. 그 당시 눈동자가 파래서, 아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눈빛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서클렌즈더라고요. 채시라 선배님은 수수하고 털털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항상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셨어요.”

 
8mm 카메라에 반한 소년, 영화감독을 꿈꾸다
중학교 때부터 오로지 영화감독의 꿈만 꾸고 달려온 김주호 동문. 그가 영화감독이란 직업에 매료된 계기는 무엇일까. “어릴 적에 누나랑 영화 한편을 봤어요. 그 영화 속에서 누나하고 남동생이 8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장난치는 장면이 나와요. 그걸 보는 순간 ‘어? 꼬마들이 영화를 찍네? 나도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감독이 될 운명이였던 걸까. 때마침 그의 집에는 부친이 납품하려다 실패한 카메라가 굴러 다녔다. 그 카메라를 가지고 사촌동생들 그리고 친구들과 활극을 찍고 그 작품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본인이 오히려 더 행복감을 느꼈단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게 되었다.

단편영화 찍으며 차곡차곡 경험 쌓아
김 동문은 ‘프렌드쉽’, ‘눈물’ 같은 단편영화로 연출을 시작했다. 여러 단편영화를 찍은 경험은 지금의 김 동문을 만드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미술가들은 수 없이 데셍을 연습하잖아요? 영화감독도 미술가처럼 데셍이 기본으로 돼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도 가급적이면 많이 찍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김 동문뿐 아니라 같은 학교 동기들도 독립영화는 모호하고 무언가 있어보이고 어려워 보여야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렌드쉽’이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고 많은 관객들과 만나면서 이 생각은 달라졌다. “아무리 독립영화라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감동할 수 없고, 감독조차 영화를 이해할 수 없어 관객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어떻게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 김 동문은 반문한다. 이를 계기로 김 동문에게는 관객이 이해할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바람사’ 흥행 비결은 차태현
김 동문은 본인이 항상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늦어지는 감독 데뷔에 조바심도 슬럼프도 없었다. 영화 ‘의형제’ 연출을 맡았지만 감독 교체로 물러났어야 했을 때도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영화가 잘 되면 본인도 인정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김 동문은 주위의 칭찬을 잘 믿지 않는다. 온전히 다 자신이 한 것도 아닌데다가 언젠가 또 실패할지도 모르기 때문. 그 때문에 이번에 ‘바람사’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중립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상업영화인 ‘바람사’는 그에게 무척이나 특별하다. 흥행에 성공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을 많이 시도해 볼 수 있었기 때문. 그는 본인이 구사한 코미디에 관객들이 반응할 때 느끼는 희열만큼 짜릿한 것은 없다고 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러한 것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고.

김 동문은 ‘바람사’의 흥행 비결로 배우 차태현을 꼽았다. 어떤 영화든 본인의 영화로 만들고, 티켓파워를 가진 신인감독 메이커라며 차태현은 늘 신인감독상을 안겨 준다고 웃음 짓는다.

 
후배 여러분 ‘참아야 됩니다’
비교적 늦은 데뷔였지만 데뷔와 동시에 작품이 흥행 몰이에 성공하며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른 김주호 동문.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에게 ‘인내심’을 강조했다. “참아야 돼요. 인내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큰 일을 할수록 인내심은 더 많이 필요하죠. 자기절제와 자기제어에 필요한 인내심, 외부의 자극이나 압박들과 싸울 때 필요한 인내심 모두 다 정말 중요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주호 동문. 아무리 내용이 진지하더라도 그것을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가 그가 앞으로 만들고자 하는 영화이다. 앞으로도 김 동문 만의 특별한 ‘재미’가 녹아든 작품의 성공신화를 기대해 본다.

 

김주호 (1975년 출생, 1993년 연극영화학과 입학, 2000년 졸업)
주요 영화 관련 활동
△김옹의 시험(각본, 감독, 미술, 편집, 2000) △프렌드쉽(각본, 감독, 미술, 편집, 2000) △속눈썹(감독, 2001) △탐정 반기평(감독, 2000) △눈물(감독, 2002) △의형제(각색, 201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각색, 연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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