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상황의 人間(인간)묘사

  ‘데카메론’은 ‘지오바니ㆍ복카치오’ (1313년~75년)가 1348년 집필을 시작하여 5년 후인 1353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作品(작품)은 복카치오의 많은 작품 중 最大(최대)의 원숙미를 보이는 작품이며, 散文的(산문적)구성과 위트가 번뜩이는 문장으로 서구散文文學(산문문학)의 기점을 이룬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東方(동방)에서 만연해온 페스트의 공포―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생명을 위협하며 전 유럽을 휩쓸었다. 人間(인간)은 눈앞에 서서히 드리우는 주검의 그림자를 보며 극한상황에서의 도피를 꾀하고, 도피의 순간에서도 주검을 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복카치오’는 그 망각을 위해 발버둥치는 허약한 인간의 모습을 7명의 숙녀와 3명의 신사를 등장시켜 10일간의 도피처에서의 對話(대화)로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모두 1백가지로 하루에 열 가지씩 이야기되는데, 神(신)과 수도사와의 종교적 이야기와 젊은 청년과 귀족부인의 애틋한 哀戀(애련)의 사연, 幸福(행복)과 不幸(불행)의 이야기―
  ―즉 인간이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말하자면 작자는 고상한 페이소스에서 음란한 외설적 이야기까지를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群像(군상)들을 근교의 외딴 별장을 무대로 삼아 연출시켜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或者(혹자)는 ‘데카메론’을 평해 당시의 부패한 귀족사회에 그대로 감염된 퇴폐적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작자인 ‘복카치오’의 생애와 작품의 구성을 통해 보면 일시에 해소된다. 그는 ‘피아메타’란 여성을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일생동안 못 잊어하던 ‘페미니스트’였다.
  또 그는 序文(서문)에서 집필동기를 ‘사랑에 고민하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특히 사랑의 아픔을 견디기에 너무 약한 여성에게 바쳐 위로하고 싶어 쓰는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페미니스트’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데카메론’의 ‘十話(10화)’ 중 제3화에서 淫猥(음외)하다는 평을 듣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작자는 이것을 의식적으로 불식하기 위함인지 제4화에서 약간의 첨어로 사족을 달아 변명하고 사르비아꽃의 毒(독)으로 죽은 愛人(애인)의 뒤를 따라 죽는 청년의 悲戀(비련)을 그리고 있다.
  또 작품의 구성에 있어서 살펴보면 ‘데카메론’은 그리스語(어)로 10일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는 14일이 걸렸다. 이것은 神(신)의 수난일인 금요일은 영혼구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고 토요일도 역시 그렇게 보냈으며, 이틀 동안은 쉬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들은 죽음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內面的(내면적)소리를 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격리되어 世俗(세속)의 모든 形式(형식)과 의식에 속박되지 않음에도 그들은 强(강)한 믿음을 의식한 것임을 말함이다.
  後日(후일) ‘까뮈’가 묘사한 ‘페스트’의 공포에서도 피하려는 人間(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비굴하며 허약한 것이었던가?

  그것에 비하면 6세기 前(전)의 도피 행각은 훨씬 여유가 있다고 말하면 너무 심한 과장이 될까? 물론 神(신)을 상실한 세대와의 비유는 무리라 할지라도 신의 죽음을 人間(인간)이 일방으로 선언한 인간의 오만함을 생각하면 ‘니체’와 ‘까뮈’와 ‘복카치오’의 작품이 풍기는 ‘패러독스’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데카메론’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훌륭한 단편으로의 요건을 갖추고 있어 그 각기의 ‘에피소드’ 속에서 재치와 유머와 人間的本能(인간적본능)의 욕구와 희로애락의 인간단면이 노정되고 있다.
  이 단편적 ‘에피소드’가 조화 있게 융합되어 한편의 거대한 人間史(인간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계상황에서 부정되기 쉬운 인간의 굴레를 작품속의 인간들은 팽개치지 않고 끝내 인내하여 그들의 운명을 무사하고 안전하게 지탱하여 귀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운명에 거역하기 보다는 순응하고 또 변화에 따라 적응하는 인간의 위대한 특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현재 상황과도 비유된다. 독일의 위대한 史學者(사학자) ‘랑케’가 “로마시대와 當時代(당시대)의 상황은 시대적으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 갈과 했다. 현재의 인간은 항상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산다. 그 불안도 정신적인 ‘페스트’공포와 유사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 불안을 극복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지혜―자연과 신의 섭리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現代人(현대인)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작품 속에서 주로 寓話的(우화적)으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용, 노래, 유희, 연회를 즐기기도 한다.
  이것을 曲解(곡해)하면 향락적 행태라 하겠지만 기실 불안해서 도피하려는 처절한 발버둥과 아우성과 거부하는 몸짓이라 하겠다. 이러한 모습들의 묘사가 文學的價値(문학적가치)를 인정받았기에 후세에 이태리 뿐 아니라 英國(영국)에도 영향을 주어 ‘쵸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섹스피어’의 劇(극) ‘심버린’ 등이 나오고, 불란서에서도 ‘드ㆍ나바르’의 유사한 ‘7일 이야기’ 등의 作品(작품)이 나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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