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俊(김동준) 著(저)

  時調(시조)가 현대의 조리로 잇씻겨 現代文學(현대문학)의 방석을 차지한 채 現代詩(현대시)와 對位(대위)의 터밭을 누린지도 어언 半世紀(반세기)가 넘었다. 따라서 創作(창작)으로 傳統(전통)의 우람을 노리는가 하면, 深化(심화)한 차원의 승화로 사뭇 正統(정통)을 과하고 있다. 한편 理論(이론)에 있어서도 名稱論(명칭론)에서 비롯하여 形態論(형태론)과 字數律(자수율)에 이르는 論及(논급)이 나왔다. 그러나 거의 小論(소론)이 아니면 試考(시고)일뿐 이렇다 할 定論(정론)은 없었다. 특히 일반적인 槪說(개설)을 통해 정리를 꾀하고, 주석과 감상을 통해 해묵은 시운을 벗기기에 조바시었음이 사실이다.
  이 밀물로 말미암아 時調詩(시조시)의 정착을 위한 연구가 드세워져 理論(이론)과 創作(창작)의 길잡이가 되고, 律格(율격)의 現代化(현대화)가 일컬어져 이른바 ‘새술은 새부대’의 바람이 일어나 오늘의 時調詩(시조시)가 이뤄졌고, 총정리한 ‘時調全書(시조전서)’까지 나왔다.
  그러나 시조의 문학적 考究(고구)는 그 熱量(열량)에 비겨 푼수가 가멸치 못했다. 이런 뜻에서 金東俊(김동준)著(저) ‘時調文學論(시조문학론)’의 출연은 時調論(시조론)의 운두를 높인 專書(전서)이다.
  첫째 形態論(형태론)에 있어 兩章(양장)時調(시조)의 不合性(불합성)과 三章(삼장)의 定型(정형)은 時調詩(시조시)의 格律(격률)보다도 詩的(시적) 구조상 起承轉結(기승전결)의 어울림에 맞춘 필연적 귀착이라는 주지는 日本(일본)의 短歌(단가)와 俳句(배구)와의 對比(대비)로 그 不當性(부당성)을 방증했다 하겠다.
  둘째 사설 時調(시조)인 長形(장형)時調(시조)에 관한 細討(세토)는 會心(회심)의 定論(정론)으로 몸소 다년간의 時調論(시조론) 강의와 創作(창작)을 통해 얻어진 結晶(결정)이다. 곧 시조가 특수층의 독점에서 탈피한 平民(평민)文學(문학)의 대표적인 노래라는 前提(전제)는 人間性(인간성)의 개방과 市民精神(시민정신)의 나타냄이라는 立言(입언)에 값한다.
  셋째 六堂(육당)이후 가람과 노산에 이르는 中興主(중흥주)에 대한 指點(지점)은 창작의 보람을 援用(원용)한 體驗論(체험론)의 錄化(녹화)다. 바꾸어 말하면 古時調(고시조)의 現代(현대)文學的(문학적) 풀이를 바라는 나머지, 新文藝(신문예)운동 이후 고식적인 논란을 반박한 조심스런 붓방아로 안다.
  넷째, 이 ‘時調文學論(시조문학론)’의 휘갑인 ‘오늘의 時調詩(시조시)’는 時調(시조)시인으로서의 높깊은 評眼(평안)과 오랜 時調論(시조론) 강의의 앙금으로 刮目(괄목)의 대목이 主觀(주관)과 客觀(객관)의 아누거리로 다뤄져 볼품이 새롭다. 특히 趙宗玄(조종현)‧金相沃(김상옥)을 비롯한 前修(전수)의 座標(좌표)를 가늠대로 삼아 李永道(이영도)‧李祐鍾(이우종) 등에 이르는 현대 감각의 수용태세와 가만한 섭생과 산뜻한 분석을 통한 탐구 의식을 기리는 동시에 時調詩(시조시)의 活路(활로)를 암시하는 나름대로의 里程標(이정표)가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 ‘時調文學論(시조문학론)’은 時調詩論(시조시론)의 不毛(불모)지대에 던지 淸凉劑(청량제)로 굳이 一讀(일독)을 권하기에 넉하다 스스로 믿는다.
<57判(판) 210面(면) 洋裝(양장) 進明文化社(진명문화사)刊(간) 二,二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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