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인생의 마지막 과제

김훈 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진 주제는 죽음이다. 아내의 죽음을 다룬 ‘화장’을 시작으로, 남편의 죽음(‘언니의 폐경’)과 화자 자신의 죽음(‘강산무진’)을 작가는 섬뜩하리만치 냉정한 필체로 부조(浮彫)해 왔다.

김훈소설의 단골메뉴, 죽음

그의 작중인물은 가족과 자신의 죽음을 냉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내면으로는 부하 여직원의 모습에서 젊고 건강하던 시절의 아내를 투사하는 애절하고 웅숭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화장’과 ‘강산무진’의 화자는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답게 슬픔과 분노, 기쁨과 환희의 감정을 철저히 내면화한다. 그들의 슬픔과 절망은 내출혈을 일으켜 더욱 뜨겁고 단단하게 응결된다.

김훈의 신작 장편 ‘내 젊은 날의 숲’의 큰 주제 역시 죽음과 관련된다. 이 소설에는 화자의 할아버지, 그가 기르던 말, 아버지, 그리고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투에서 산화한 수많은 죽음이 겹쳐진다. 소설은 미대를 졸업하여 민통선 내 수목원의 세밀화 계약직원으로 취직한 화자의 체험과 가족사가 종횡으로 엮이면서 사람살이의 오욕과 애증, 사물(사람)의 이중성,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 등 일상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죽음 소재로 형이상학 주제까지

화자의 조부는 만주에서 지냈지만 독립운동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지방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뇌물 및 알선수재죄로 수형 생활을 한다. 화자와 어머니는 그와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하고 지내지만, 화장장에서 어머니는 “불쌍해서 어쩌나” 하며 오열을 터뜨린다. 그녀가 밤잠을 못 이루며 딸에게 전화를 해댄 까닭은 가족을 위해 창녀와 포주의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남편이 불쌍하고 미안해서였던 것이다.

화자와 아버지는 “미안허다”와 “괜찮아요, 아버지”란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화해하고 용서한다. 그런 점에서 슬픔은 온전히 살아 견디는 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슬픔은 살아견디는 자의 몫

화자는 꽃과 나무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를 차츰 인식해 나간다. 수목원과 군부대에서 굳이 화자에게 연필 세밀화를 의뢰한 까닭은 기계가 사람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진은 대상을 가장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와 그 아득한 거리까지 그려내지 못한다. 화자가 꽃과 나무, 전사자의 유골 그림을 두 장씩 그리는 것도 관찰만으로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삶은 사랑하므로 견딜만 한 것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화자는 수목원에서의 마지막 과제를 완성한다. 나무의 겨울눈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에 숨겨진 모습이 달라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실제의 형상과 내부를 열어 확대경으로 들여다 본 해부도 두 점으로 그려진다. 꽃과 나무는 한해살이로 생을 마치기도 하지만 이듬해 새생명을 얻어 생사를 반복한다. 그것은 인공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도 그러할 테지만, 서로 사랑하므로 견딜만하다. 그 삶의 과정이 추잡하고 욕된 것일지라도 가족을 위해서는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점을, 이 소설은 아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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