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動(행동)하라 衝動(충동)하라

  本校(본교) 演映科(연영과)에서는 제16회 졸업 공연으로 안톤․체홉作(작) 세자매를 본교 소극장과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본교 연영과가 ‘스타니슬라브스키’로 대변되는 정통적 리얼리즘에 상당한 저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와 같은 계열의 劇作家(극작가) ‘안톤․체홉’의 작품을, 졸업 공연이 16회의 연륜을 쌓아오는 동안 6회(와아냐 아저씨) 10회(세자매) 14회(갈매기) 16회(세자매) 이처럼 네 번씩이나 레퍼토리로 선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체홉 作品(작품)에 상당한 호감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체홉劇(극)의 특색은 대충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두드러진 특색으로서 劇的(극적) 서스펜스의 외면상 결여라 할 수 있다. 체홉劇(극)에 있어서는 극의 움직임이 전진하지도 않거니와 등장인물의 성격의 발전도 없고 외면적으로 두드러진 별다른 사건도 없다. 둘째는 근대劇(극)의 드라마트루기가 규정하는 의미의 갈등에 관한 限(한) 체홉劇(극)에는 극적 갈등이 없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劇(극)을 자세히 음미해 볼 때 그의 劇(극)속에는 주로 내면적인 성질의 것이긴 하지만 갈등이 겹겹으로 중첩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그럼으로 해서 항상 一聯(일련)의 긴장이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체홉劇(극)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과 국면을 쌓아 올리면서 플릇을 전개시키는 정통적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극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직접적 행동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음악의 라이트․모티브처럼 그의 극에서 서로 얽힌 여러 가지 테에마의 상호 연관 작용을 읽을 수 있다.
  여러 가지 테에마는 주된 테에마와 때로는 대조를 이루고 때로는 평행을 이루면서 극을 일관하고 있으며 이렇게 극을 일관하는 여러 가지 테에마가 극의 직접적 행동을 대신하는 것이다. 마지막 특색으로는 그의 뛰어난 상징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등으로 우리는 흔히 체홉劇(극)을 ‘靜劇(정극)’ 또는 ‘기분劇(극)’ 내지 ‘분위기劇(극)’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 演出(연출)을 맡고 있는 문석봉군은 안톤․체홉에 상당히 정통한 것 같이 보인다. 그는 과장된 표현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으며 사건의 전개로 빚어내는 인물들간의 갈등이나 투쟁보다 詩情(시정)어린 분위기의 表出(표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演出者(연출자)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에서 詩情(시정)어린 분위기가 잘 表出(표출)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희곡 가운데 숨어있는 생명을 찾아내서 그것을 다시 생명 있는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는 것이 演出者(연출자)의 作業(작업)일진대 문석봉君(군)은 정통적 리얼리즘과 체홉 作品(작품)이라는 강박관념에 얽매여 연극적재미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닐까? 체홉劇(극)은 대개 복잡하고 풀어헤치기 어려운 것 같이 보이며 구성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리멍텅하다. 하지만 이 흐리멍텅한 인물들의 내면에는 서로 겨루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갈망이 있다. 그들은 모두가 누군가 무엇인가를 열망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꿈꾸고 거역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찾아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演出(연출)의 작업은 이 갈망하는 내면의 세계가 개화할 수 있는 창을 마련해 주는데 있다. 演出者(연출자)는 가식의 세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내면의 세계가 탄생될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체홉劇(극)에서의 이 내면의 세계란 곧 詩情(시정)어린 분위기의 세계이며 관객은 연출가에 의해 表出(표출)된 이 詩情(시정)어린 분위기를 통해서 비록 행동은 없지만 연극적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는 내면적 세계의 투쟁이 별로 눈에 띠지 않았다. 그들의 대사는 건조하고 대사투는 한결 같으며 도무지 內的(내적)인 행동이 없다. 그들은 무대에서 결코 행동하지 않으며 생활하지 않으며, 충동하지 않는다. (여기서 행동․생활․충동은 무도 內的(내적)인 世界(세계)의 것이다) 외면적 행동을 극도로 배제한 것이 체홉의 희곡일진대 거기다 內的(내적)인 행동․생활․충동이 없는 체홉劇(극)은 단지 지루하게 느껴질 뿐이다.
  체홉을 잘 살려서 공연하는데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을 작품의 분위기를 아무런 파장없이 어떻게 살려 나가느냐 하는 것과 배우의 연기술이 고도로 수련되어 있느냐 하는 것과 배우의 연기술이 고도로 수련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체홉의 작품을 서투른 배우가 섣불리 연기할 수 없음은, 체홉은 다른 어느 극작가보다도 침묵이 대사보다 종종 더 중요하다는 점과 인생의 진짜 중요한 흐름은 表面(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체홉劇(극)을 연기하는 연기자의 경우 대사와 행동으로 表出(표출)되는 외적인 형상보다 대사와 행동 속에 감춰져 있는 내면세계를 관객으로 하여금 인식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면적 세계를 관객에게 인식시키는 데는 치밀한 대사분석, 크고 작은 행동상의 정당한 모티브의 형성, 적절한 포오즈, 세련된 화술 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졸업공연의 등장인물들에게서 우리는 그들의 內面的(내면적) 세계를 인식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제 大學(대학)을 졸업하고 기성 극단의 문을 이제 막 두드리는 이번 출연자들에게서 체홉劇(극)을 무난히 소화시킬 수 있는 연기력을 요구한다는 것은 過慾(과욕)일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4년 동안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그들은 체홉劇(극)을 레퍼토리로 선정했던 것이고 또 연극을 전공으로 한 그들에게는 체홉劇(극)은 한번쯤 부딪쳐 보고 싶은 만만치 않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체홉劇(극)에의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4년 동안 연기 수업을 닦은 그들의 연기는 연극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대학생들의 아마츄어 연극의 연기이상이 되지 못하였다. 그들의 대사는 건조했고 감정의 정당한 모티브가 형성되지 못해 劇(극)의 설득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체홉劇(극)은 흔히 몇 개의 정서가 모여서 劇(극)전체를 일관하면서 정서의 이른바 관현악적 편성의 바탕을 마련해 준다고 한다. 즉 어느 연극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체홉 劇(극)에서는 연기의 앙상블이 중시되는 것이다. 이번 作品(작품)의 인물들은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기에는 개개인의 內的(내적)인 연기가 성숙되지 못하였다. 앙상블이 자아내는 일관된 詩情(시정)어린 분위기와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체홉劇(극)에서 그렇지 못한 배우의 연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지루함 뿐이다. 어느 공연에서든지 그 공연이 갖는 美學的(미학적)인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것이다. 연영과의 발전을 바라는 의미에서 이번 공연의 장점은 제쳐 두고 단점만 들춰내서 반성해보았다. 끝으로 이제 기성 극단의 문을 두드리는 졸업생 여러분의 앞날에 많은 발전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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