個性(개성)을 보는 기쁨 뿐

  ‘名詩(명시)’라는 말이 있다. 辭典(사전)에는 ‘유명한 詩(시), 아주 잘 지은 詩(시)’라고 풀이되어 있다.
  世界(세계)의 名詩集(명시집)이란 것들에는 당연히 그러한 ‘유명한 詩(시), 아주 잘 지은 詩(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한 시들을 잘 살펴보면, 적어도 한 가지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그 하나는 누구나 기본 교양만 갖추고 있으면 충분히 이해하고, 共感(공감)하고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결코 황당하지 않고, 생경하지 않고, 이해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렇지가 않다면, 그렇게 몇십년 이상, 천년 이상, 오래 오래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어 오지 못했을 것이고, 시 자체의 명맥도 유지되어 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어떤 일부의 시인들은 공공연히 주장한다. 현대에 와서 시는 難解(난해)한 것으로 되었다라고 그러면서 言語(언어)기능의 팽창과 變異(변이) 또는 서정성의 배격과 사상성의 도입, 또는 極端(극단)으로 개인적인 감각과 情緖(정서)에 대한 偏向(편향) 등 여러 가지의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現代(현대)에 와서 시가 難解(난해)한 것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전반적인 현상도 아니고, 좋은 현상도 아니요, 더구나 자랑할 것도 아니다. 象徵主義的(상징주의적)인, 혹은 또 超現實主義的(초현실주의적)인 그러한 일부의 현대시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무의식의 세계에서 ‘精神(정신)의 가장 위대한 자유’ 또는 ‘超絶的(초절적)인 美學(미학)’을 구하고, 통상의 의식과의 關聯(관련)이 斷絶(단절)된 이미지의 造形(조형)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그 결과로 스스로 ‘詩(시)의 意味(의미)’를 추방하고, ‘詩(시)의 危機(위기)’까지 논의되게 했다. 그런 가운데 시는 評論家(평론가)나 시인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기성시인들의 작품에서 자주 느낀,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작품에의 當惑(당혹)을, 나는 금년도 東人(동인)재학생들의 작품에서도 느끼고 있다. 이들 재학생 작품들(12人(인)의 작품 26편)의 거의 절반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인 것이다.
  그것을 그런 대로 難解(난해)한 현대시적인 趣向(취향)의 계승이라고 보아 준다면, 난해시에 관한 것 이상의 다른 문제점은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작품일수록 거기에서는 특히 表現(표현)의 미숙함이나 지나친 多辯(다변)이 눈에 뛴다. 그리고 지나친 多辯(다변)의 경우에는 相異(상이)한 이미지의 과도한 나열이 더욱 그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해주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포함한 全(전) 26篇(편)의 재학생 작품들 가운데 다소 돋보이는 작품들은 다음 네 사람의 작품들이다.
  먼저 黃淸圓(황청원)(僧伽科(승가과) 3년)의 경우는 <그대가 내게로 오는 길> <날지 못하는 새를 위하여> <智異山(지리산) 蘭(난)을 보며> 등 3편을 발표하고 있다. 다분히 東洋(동양)의 고전적 한시의 詩香(시향)이 풍기고 있는 端麗(단여)한 작품들이다. 表現(표현)이 훌륭하게 다듬어져 있고, 아름다운 시각적, 이미지의 차분한 配列(배열)에 특히 뛰어난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그대가 내게로…>의 ‘江(강)이 山(산)을 이고 앉은 꿈길’ ‘붉은 새 한 마리로 서성이는 새벽들’과 같은 구절이라든가 <智異山(지리산)…>의 ‘날개 무성한 純金(순금)의 새’ ‘성성한 깃발 ’등의 구절은 여간해서 얻기 어려울 좋은 구절들이다.
  自然(자연)을 저만치 멀리 두고 바라보는 그 靜觀(정관)의 자세에서는 修道僧(수도승)의 體臭(체취)가 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그 아름다운 視覺的(시각적)이미지들은 自然(자연)을 그만치 멀리 두고 바라보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리라.
  박진관(僧伽科(승가과) 3年(년))은 <봄나비> <廣場(광장)에 핀 꽃들> <無言(무언)의 廣場(광장)에 서서> <들판에 누워> 등 4편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거의 散文體(산문체)에 가까운 美文(미문)을 쓰면서, <봄나비>에서는 30年代(년대)의 未堂(미당) 徐廷柱(서정주)선생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浪漫的(낭만적)인 熱情(열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廣場(광장)에 핀 꽃들><無言(무언)의 廣場(광장)에 서서> <들판에 누워>등의 세 작품에서는 인간의 信仰(신앙), 自由(자유), 그리고 現實(현실)의 어둠 같은 것에 대해서 열심히 그의 신념을 토론하고 있다. 이들 後者(후자)의 세 작품에서는 이른바 參與詩(참여시)라는 것의 영향이 다소 엿보인다. 흔히 參與詩(참여시)란 것에서는, 앞에 말한 難解詩(난해시)의 경우와는 다른 次元(차원)에서 抒情性(서정성)이 배격되고 그 대신에 思想性(사상성)이 강하여져, 작품이 매우 드라이하게 씌어지는 예가 많다. 그런데 박진관에 있어서는 낭만적인 열정의 强度(강도) 때문에 작품이 별로 드라이해지지 않은 것이 볼 만하다. 특히 <들판에 누워>가 그러하다. 그리고 이 작품에 있어서의 超然(초연)한 氣像(기상)은 또한 未堂(미당) 徐廷柱(서정주)의 오래前(전) 작품 <無等(무등)을 보며>를 연상하게 한다. 생각건대 박진관은 현재의 東大(동대) 재학생들 중에서 未堂(미당)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韓萬洙(한만수)(國文科(국문과) 2年(년))는 <말(言(언))><論山(논산) 간 친구가> <秋夕(추석)에>등 3편을 발표하고 있다. 그중 <말(言(언))>에서는 4․19와 오늘의 40代(대)에 대해, <論山(논산)간…>에서는 入隊(입대)한 친구에 대해 <秋夕(추석)에>에서는 南北分斷(남북분단)의 現實(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하면 現實(현실) 感覺(감각)도 꽤는 날카롭고 歷史意識(역사의식)도 투철한 편이고, 작품을 빚어내는 솜씨도 있는 편이다. 분명히 參與詩(참여시)란 것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또 參與詩(참여시)로서 써내놓은 작품들인 듯하다. 위에서도 參與詩(참여시)의 문제점 한 가지에 대해 조금 언급했지만 韓萬洙(한만수)의 경우에도 <말(言(언)>의 歷史意識(역사의식), <秋夕(추석)에>의 民衆意識(민중의식), <論山(논산) 간…>의 庶民意識(서민의식) 등은 근본적으로 散文的(산문적)인 것이며, 詩(시)에 너무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김강태(國文科(국문과) 4年(년))는 <살(肉(육))․同行(동행)><同行(동행)의 바다><손가락 세 개 되어 돌아온 초록섬> 등 3편을 발표하고 있다. 다분히 象徵主義(상징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대충 살펴보니까, 어쨌든 그들이 각각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음이, 이를테면 個性的(개성적)이고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호감을 가지게 한다. 자칫 個性(개성)을 없애고 평준화 또는 규격화하는 것이 무슨 理想(이상)이기라도 한 것처럼 誤導(오도)되고 있는 암담한 우리時代(시대)에 어디선가 個性(개성)을 볼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기쁨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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