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푸른 校庭(교정)의 잔디밭에서 ‘만약’ 지난날의 학원사태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드니 후크’의 말처럼 역사에 있어서 ‘만약’이라고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떻게 되었으리라는 생각보다도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얘기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부질없는 생각임을 곧 깨닫게 됩니다.
  知性人(지성인)의 위치란 고수하기가 정말 어려운 가 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많은 걸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제물을 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는데도 벌써 滿員(만원)이 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시내버스를 탈 때마다 학생회수권을 구할 수 없어 내릴 땐 ‘저 학생이에요’란 말을 녹음기의 테이프처럼 반복하면서, 놀던 날들이 하루 이틀 더해 갈수록 무료함과 함께 교정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친구들이, 교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갤로웨이’의 말을 빌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人間(인간)의 태도에는 다음 세 가지의 相異(상이)한 類型(유형)이 있답니다.
  첫째는 保守主義的(보수주의적) 立場(입장)으로 이는 변혁으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소될 때까지 袖手傍觀(수수방관)하고 기다리는 것이고, 둘째는 自由主義的 立場(자유주의적 입장)으로 이는 인간의 智力(지력)과 노력에 신뢰를 걸고 비교적 온건한 수단과 절차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셋째는 急進主義的(급진주의적) 立場(입장)으로 이는 즉흥적이고 과격한 수단에 의한 문제해결을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이들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입장을 놓고 비교해 볼 때 自然的(자연적) 問題解決(문제해결) 手段(수단)에 放任(방임)해 버리려는 보수주의적 사고방식이나 과격한 수단의 채택을 주장하는 급진주의적 태도는 이제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현실정은 18세기의 자유방임주의 시대처럼 한가하기만 할 때가 아닐 뿐만 아니라 暴力革命(폭력혁명)으로 모든 社會問題(사회문제)가 一朝一夕(일조일석)에 해결될 수 있을 정도로 그 문제가 單調(단조)로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智慧(지혜)를 總動員(총동원)하여 끈기와 인내로 문제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일방적인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기 전에 대화로 거리감을 좁혀 나가려는 대학인의 自由主義的(자유주의적) 立場(입장)만이 現代(현대) 大衆社會(대중사회)의 內在的(내재적)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理性(이성)이 숨 쉬고 자유의지가 인정받은 그런 사회를 기대해 봅니다.
  이제 開學(개학)과 함께 勉學(면학)에만 전념할 수 있고 학원은 언제나 정상궤도만을 달릴 수 있는 사회, 페퍼포그의 낭만이란 말로 대학가를 얘기하지도 말며 깨진 벽돌의 잔해 속에서 대학을 그려내지도 맙시다.
  그리고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自己虐待(자기학대)와 諦念(체념)을 하지는 맙시다. 대학이 패배감과 무기력으로 차있을 때 그 사회는 어떻겠어요. 患部(환부)를 세차게 도려낼 때 남는 것은 상처뿐이랍니다.
  또한 상처의 아픔만 느낄 것이 아니라 再起(재기)한다는 신념을 가집시다. 젊음의 불꽃이 外的(외적)인 영향 없이 타오르는 象牙塔(상아탑)이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 여름잠이 飛翔(비상)을 위한 여름잠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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