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옥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부교수
▲김성옥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부교수

올봄에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촉촉이 적시는 봄비 같은 영화였는데, 이름은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입니다. 제목을 ‘지나온 삶들’로 보아도 좋을 법한데, ‘전생(前生)’으로 읽히는 것은 제가 불교를 공부하기 때문일까요. 이름에 끌려 무작정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부모를 따라 캐나다 이민을 떠나야 했던 12살 소녀. 그녀가 부딪히는 낯선 땅에서, 두고 온 나라의 기억들은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민을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는 노벨상을 못 타잖아”라고 당차게 말하던 나영이는 지금 노라라는 이름으로 토니상을 꿈꾸며 작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와 달리,  과거의 시간과 흔적들을 맴도는 해성이 있습니다. 둘의 만남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다시 어긋나면서, 각자의 현실적인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남편과의 첫 만남에서 노라는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국에는 인연이라는 말이 있어. 섭리 또는 운명이란 뜻이야. 사람 간 관계에 대한 말인데, 불교와 환생에서 온 개념 같아. 만약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우연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거야. 왜냐하면 전생에 뭔가 있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거든. 결혼까지 한다는 건, 전생에서 8천 겁의 인연이 쌓였다는 거야...”

인연에는 남녀 간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와 동료 사이의 인연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인연 속에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지요. 아침에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와 나무의 인연일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길을 가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시고, 그곳을 향해 절을 올리셨다고 합니다. 왜 절을 하시느냐고 묻는 제자에게,  “어쩌면 내 전생의 조상이거나 여러 생을 거치는 동안의 어버이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천수만 겁의 윤회전생 속에서 한때 나의 부모가 아니었던 존재가 무엇이 있을까요. 절친했을 누군가가 지금 여러분 곁을 지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교실에서 만나는 선생님, 캠퍼스 곳곳의 수많은 친구와 선후배, 잠시 앉아있을 벤치와 나무 그늘도 인연이 될 수 있습니다. 동악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인연일지라도 소중하게 대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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