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빈 기자
▲오은빈 기자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기자라는 것. 기사를 쓴다는 것. 그 글이 신문에 기록된다는 것.

돌이켜보면 참 나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누가 볼까'하는 불안함에 눅눅한 일기장 속 잉크 한 방울을 남기지 못했는데. 많은 동공이 내 글의 활자 하나하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동대신문에 지원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발걸음이라든지 대학을 위한 봉사 정신 같은 거룩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서투른 1학년의 조급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조금의 거룩함이라도 가져갔어야 했나? 타자 소리만으로 신문을 대하는 그들의 진심의 내음이 가득 느껴지는 공간에서 나는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발밑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기사를 썼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겼는데 역시나. 내 첫 초고는 빨간 줄 덩어리였다. 피드백으로 가득 찬 노트북 화면은 이 기사는 네가 쓴 글이 아니라고 나무랐다. 이름 옆에 붙은 '기자'라는 호칭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탈수습기를 쓰는 지금도 사실 크게 변한 건 없다. 1652호 조판을 진행 중인 현재, 인터뷰는 약속 된 날짜에 오지 않았고, 아이템은 갑자기 바뀌었으며, 내 기사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동대신문에서의 매 순간이 불안과 어둠으로 깃든 것은 아니다. 몇 번의 조판을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음을 깨 닫게 된다. 엄청난 연대감보다는 동지애에 가깝다.

조판 중에는 말없이 노트북만을 응시하다가도 한 번씩 공허한 눈으로 서로를 응시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정도의 힘듦을 느끼고 있다는 연민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의 조판을 더 견딜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약간은 고요하고 잠식된 분위기가 찾아올 때야 비로소 내가 이들과 함께 신문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곱씹어본다.

5번의 조판을 마치고 8번의 조판이 남았다. 그래서 영원히 기록될 1652호에 탈수습기를 빌려 말한다. 이 글은 불안했던 '나'의 어리숙한 고백인 동시에 지금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을 '그들'에 대한 감사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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