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경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 김윤경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3월이다. 3월의 캠퍼스는 신입생의 생기발랄함으로 채워진다. 이 무렵 만나는 신입생에게 어떤 대학생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신입생들이 기대하는 대학생의 모습인 듯하다. 자기 관점과 주관을 정교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학생에게 자신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개 MBTI를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향을 나타내는 네 개의 알파벳 조합으로 한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질문은, 수십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기반으로 산출된 MBTI로 명확하게 규명된다. 16개로 분류되는 MBTI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코드이다.

한편, 자기 이해에 관한 더욱 전문적인 분석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출연하는 상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는 의뢰인의 성장 과정을 되짚으며 양육자와 성장 환경이 어떻게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지 설명한다. 전문가의 분석을 들은 의뢰인이 상처와 아픔을 직면하고 위로와 치유를 받으며 프로그램은 완성된다.

글쓰기 수업에서는 삶을 돌아보고 기억을 떠올려 현재 자기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색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기 이해를 통해서 정체성을 탐색하는, 자기 탐색 글쓰기 활동이 그것이다. 학생들의 글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이 담겨 있다. 이들은 자기 탐색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직면하고, 치유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나를 연결해 서사화된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 글쓰기를 통한 자기 탐색의 완성일까? 자기 탐색은 그다음 단계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지금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직면한 후에는 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나를 구성하기 위해 새로운 선택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의 상처와 결핍으로 현재를 합리화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를 뛰어넘어 스스로 선택한 나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에는 ‘기투’와 ‘초월’의 개념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는 주어진 삶의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적 삶의 태도인 ‘살아가기(living)’와 자기 규정을 통해 정체성을 새로 구성하는 주체적 삶의 태도인 ‘실존(existing)’을 구별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자기 초월을 향해 끝없이 스스로를 던지는 기투와 초월의 연속으로 비로소 실존적 주체가 될 수 있다.

오사카 나오미(大坂 なおみ)라는 미국 프로테니스 선수가 있다. 아이티계와 일본계 혼혈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2020년 전미 여자프로테니스의 웨스턴앤서던 오픈경기에서 4강에 올랐지만 백인 경찰관의 총격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며 기권을 선언했다. 그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운동선수이기 전, 흑인 여성이기에 공식적인 항의를 하였노라 밝혔다. 일본 국적자로서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녀가 커리어를 포기하며 흑인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낸 것은 스스로를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실존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말이 길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만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현재를 인식하고 지금의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 초월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신입생들은 저마다 기대하고 있는 대학생의 삶이 있다. 삶의 주인이 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전문가의 분석이나 심리 분석 모델이 아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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