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과 22 홍석원
▲행정학과 22 홍석원

“가난이 자랑이냐”

충격적이었다. 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비롯한 학생사회에서 “가난이 자랑이냐”는 충격적인 표현이 곳곳에 등장했다. 학업 고취 목적 학사 제도 중 소득 분위를 반영하는 ‘장학’은 학생사회에 혐오와 갈등을 촉발했고, 제도에 대한 불만은 소득 계층 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학창 시절, 우리는 ‘정의’의 다양한 기준을 배우며 필요에 의한 분배적 기준을 배운 적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이 분배되는 것이 정의롭다는 것이다. 장학 제도는 다양한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필요’라는 정의의 기준이 학생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다.

우리대학은 학기별 성적 장학 제도로 ‘동국인재육성장학’ 제도를 두고 있다. 장학 대상자는 새 학기 개강 전에 직전 학기 성적, 비교과프로그램, 소득분위를 고려하여 학기별로 선정된다. 최근 장학 제도와 관련해 화두에 오른 것은 ‘소득분위’였다. 학과 석차 1등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타학생에 비해 높은데도 불구하고 ‘소득분위’ 때문에 장학 대상자로 선발되지 못했다는 내용의 장학 제도 공정성을 다룬 글이 학생 커뮤니티에 속속 게시됐다.

장학 ‘제도’에 대한 옳고 그름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공정’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진 사회에서 출발선이 달라도 똑같은 기준, 즉 성적만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하는 반면, 출발선과 결승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상이한 출발선과 결승선을 장학 제도의 기준 조정을 통해 같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며, 장학 제도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관해서는 누구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개인의 기준이 모두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학생은 제도에 대한 개인적 가치판단을 특정 상황에 처한 사람에 대한 혐오로 연결했고 이것은 “가난이 자랑이냐”와 같은 충격적인 표현으로 표출됐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그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수혜자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개인의 지향점과 관계없이 제도에 대한 가치판단을 어느 한 사회 구성원의 부류를 혐오하는 것으로 확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설령 장학 제 도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도의 문제이지 누군가의 ‘가난’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 사회에서 개개인의 의견과 말 한마디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우리의 말이 학생사회에 한마디, 한마디 외쳐질 때,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과 힘을 지니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적지를 ‘제도’가 아닌 다른 곳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도에 대한 불만 표출에 심취한 채 말의 무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제도에 대한 불만은 제도의 개선을 통해 해결돼야 하는 문제다. ‘개인의 의견’으로 포장된 누군가를 향한 혐오적 비난은 갈등을 부추길 뿐,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져다줄 수 없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하고 공유함으로써 타협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자유로운 의견 표명이 당연한 사회 속에서, 학생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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