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람 기자

 

1650호를 끝으로 1638호부터 함께했던 동대신문을 떠난다. 그동안 복잡한 사회를 다루고 있는 신문을 라면 받침대 그 이상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내가 학교 신문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곤 3학기 동안 버텼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채로 들어왔던 동대신문에서의 3학기는 그저 버티다라는 말 이외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알찬 대학 생활을 목표로 들어왔던 동대신문은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좌절, 우울, 절망 등 온갖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

학창 시절 만들어본 카드뉴스가 전부였기에 지면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제작하는 것도, 인디자인으로 지면을 구성하는 것도, 학보사의 이름으로 된 SNS 계정에 올라갈 카드뉴스를 제작하는 것도 단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편집기자의 특성상 핸드폰과 노트북을 옆에 두고 계속 확인해야만 했다. 언제 보도기사 일러스트 요청이 들어올 지 모르고, 피드백이 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나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편집차장·부장, 편집장의 순서로 피드백을 모두 받아야 했는데 다들 할 일이 있어 바로 확인을 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땐 피드백이 올 때까지 폰을 계속해서 확인해야만 했다. 한 번은 피드백이 오면 바로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에 깊게 잠에 들지 못했는지 새벽에 카톡 알림음 하나로 벌떡 일어나 폰을 확인할 정도였다.

기다리며 받았던 피드백은 수정사항 없이 "이대로 해주세요"라는 말이 오길 바랐으나 부족한 실력 탓인지 한 번 피드백이 올 때마다 카톡창을 가득 채웠다. 하나의 기사를 카드뉴스화 하기 위해 최소 4시간이 걸렸는데 가끔은 이 시간을 쓰면서도 그러한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니 점점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어 조판이 다가오면 겁부터 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버티기엔 버거웠던 3학기를 보내면서도 차마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힘듦을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는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은 다소 힘들더라도 결과물을 올린 뒤에 내게 "이번 카드뉴스 만드느라 너무 고생했다", “실력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카드뉴스 잘 만들었다며 칭찬을 해주곤 했다. 특히 나와 함께 일을 했던 한 명의 편집기자가 있었는데 같이 일을 하며 얻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힘듦보다 더 크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취재부와 비교해 편집부는 2명이라는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돼 더 서로에게 의지하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옆에서 함께 인디자인을 다루고, 일러스트를 만들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이야기하며 결국 최고의 결과물을 냈을 때 얻는 뿌듯함은 더 커져만 갔다. 몇 시간을 투자해 만든 일러스트가 지면에 실려 학교 곳곳에 배치되기도 하고, 카드뉴스에 달리는 좋아요는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짜릿하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13번의 조판을 진행하며 지면과 웹 기사에는 일러스트=손예람 기자라는 문장이, 동대신문 인스타그램과 에브리타임에는 카드뉴스 제작 손예람 기자라는 게시물이 여러 개 올라왔다. 앞으로의 동대신문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뛰어난 편집기자들이 들어올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일러스트와 게시물을 쌓이기에 사람들이 결국 나를 잊고 말 것이다. 기억 속에서 손예람 편집기자는 금방 잊히겠지만 그럼에도 기억해주길.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