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40개 의과대학이 있고 의대 정원은 연간 3,058명으로 2006년 이후 17년 동안 늘지 않고 있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를 촉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서 과학적 근거 기반 의료정책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과학적 근거는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이 체계적·합리적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대 정원 확대를 바라보는 정부·의사협회·지방정부·환자단체·시민단체·의과대학 등의 시각 차이가 크고, 의대 정원이 확대되더라도 의대에 입학해서 전문의가 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디테일한 정책설계가 중요하다.

현재 의사가 부족해서 지방의료원은 진료가 제한되고, 필수의료 분야는 환자들의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이 일상화되고 있으며, 지역 간 의료격차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고 있다. 그래서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지역·필수의료 의사를 확보하기 위한 혁신으로 의대 정원 확대가 검토되고 있다. 그런데 과학적 근거 기반으로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10년 후 필요한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수는 얼마인지, 의대 정원 확대가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지역별로 의대 정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의대 교육 여건은 충분한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인공지능(AI)이 의사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 등과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 정책 개입 방향과 10년 후 여러 사회 모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현재 의사 수와 국민들의 의료이용 데이터로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를 추정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전국 각지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입학 정원을 배정받으려는 노력과 의대 신설 요구가 과열되고 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와 맞물려 각 지역의 의대 정원 확대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과 여야 정치권이 의대 정원 확대에는 동의하더라도 증원 규모와 배분 방식에서 입장 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칫 의대 정원 배분이 과학적 근거 기반이 아닌 정치적 나눠주기 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지역·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무한정으로 늘릴 수도 없지만, 단순히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충분히 확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디테일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이유이다. 정부는 10년 후 효과를 보게 될 의대 정원 확대뿐만 아니라 당장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패키지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책 방향이 바뀔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확보는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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