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첫 번째 존재 이유임을 가슴 깊이 새겨 달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찰들에게 당부한 발언이다.

지난 29일은 어느 평범한 좁은 골목에서 159명의 젊음과 사연이 스러진 이태원 참사 1주기였다. 가족을 잃고 지내온지 1년, 지하 35m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자는 서울시의 냉소에도 꺾이지 않은 유족들이 거리로 나섰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추모 행진 속 글자들은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진상규명’ 요구로 가득했다. 가족 잃은 아픔을 안은 유족들이 윤 대통령의 자리를 비워둔 채로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그를 기다렸다.

끝내 윤석열 대통령은 추모대회가 ‘야당 주도의 집회’라며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결국 추모대회는 경건한 추모의 장이 아닌, 여야싸움의 정쟁화 판이 됐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참사의 교훈을 얻고 아픔을 나누는 애도로 이뤄져야 하는 장이 정치 논쟁이 되면서 유족들의 가슴을 또다시 헤집었다.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참여했더라면 그 누구도 정치집회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돌이표다. 지난 2일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혐의로 기소된 해경 지휘부가 9년만에 무죄 확정됐다. 승객의 인명피해 가능성을 ‘몰랐다’는 것이 무죄의 근거였다. 결국 말단 경위 한 명을 제외한 해경 지휘부 윗선의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이로써 세월호 참사는, 국가까지 책임을 지지 않은 재난이 됐다. ‘몰랐다는 이유’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면 더 이상 재난을 방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재난 시 책임자는 ‘지시할 이유’가 사라지고, 모를수록 무죄와 가까워질 테다.

반복된 재난이 정부의 안전 불감증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법은 1년 째 표류 중으로, 39건 중 단 1건만 통과됐다. 재난에 처한 국민의 안전을 이젠 국가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살릴 수 있는 죽음이었을지라도. 책임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묻자던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됐다. 우리는 이제, 살아남아야 한다.

마치 무책임의 연쇄고리처럼 국가의 책임 있는 자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책임을 돌리는 사이 유족들은 방치됐다. 국가에게 책임을 물으면,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되물을 것이며 이는 유족들의 공분에만 그치게 될 것이다. 이제 피해자와 유족들은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하나. 혹자는 놀러 갔다가 죽은 걸 왜 국가가 책임을 지냐고 폭언한다. 놀러간 국민을 지키는 것이 진정 국가가 할 일이 아닌가.

애도와 연대가 소멸한 죽은 국가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들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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