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김호성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아쉬웠다. 안타까웠다. 목숨을 걸고 그 먼 바닷길을 건너 왔는데, 아직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이 남았는데, 귀국이라니... 단기유학승 신분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님은 운명을 거스르기로 한다. 아니, 그것이 운명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귀국선 배가 육지를 떠나는 순간, 스님은 바다로 뛰어든다. 그리고 육지로 기어올라서, 기꺼이 ‘불법체류자’가 된다. 일본 천태종의 엔닌(円仁, 794-864)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는 838년 6월 13일부터 847년 12월 14일까지 쓴 스님의 일기를 묶은 책이다. 

스님은 불법체류자로서 실정법을 위반하였으나 나쁜 뜻이 아니었음을, 불법을 배우려는 순수한 의도였음을 각 관청에 호소하고, 천태산이나 오대산과 같은 불교의 성지(聖地)로 순례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탄원한다. 

불법체류자이기에 겪는 고생만 고생은 아니었다. 당나라 무종(武宗)에 의한 불교 파괴, 즉 회창파불(會昌破佛)을 만나게 된다. 비록 외국의 승려이지만, 강제로 환속(還俗, 속인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당하는 일에 예외는 없었다. 그때 스님은 “환속되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우리가 필사한 불경들을 (일본으로 – 인용자) 가져가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다.”(845년 5월 12일)라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우리로서 고마운 일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장보고(張保皐, ? - 841 혹은 846)에 관한 정보가 전해져 온다는 사실이다. 엔닌스님이 중국에서 순례할 때, 장보고가 세운 ‘신라타운’ 안의 신라 사찰 적산(赤山)의 법화원(法華院)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스님은 이 절의 상황과 함께, 여러 가지 편의를 얻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리하여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일본, 당, 신라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게 되었다. 한 스님의 순례 뒤에는 동아시아 전체가 협력했던 역사가 있었던 셈이다. 스님은 그 협력의 역사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하여 갈등과 불화가 깊어져 가는 오늘의 동아시아, 과연 공동의 협력을 통하여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엔닌스님의 유산을 상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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