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수 이화여대 안보학 특임교수
▲임명수 이화여대 안보학 특임교수

 

  최근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놓고 ‘이념논쟁’이 뜨거웠다. 육사와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1920년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한 이력 이 있어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두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논란은 국방부 청사 앞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 이전과 해군의 1800톤급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 14일 발표된 한국리서치 등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방증하고 있다. 조사에 응한 1002명 중 58%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반대했고, 찬성한다는 의견은 26%에 그쳤다. 또한, 지난 15일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애국선열의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2018년 육사로부터 받은 명예 졸업증을 반납했다. 이는 학계와 전문가의 검증이나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장군의 사상검증과 흉상 이전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역만리 이국 땅에서 ‘오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던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1920년 중국 연변 일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홍범도 장군에게도 공과(功過)가 있다. 그림자로는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작금의 행태는 장군의 공적보다 잘 못만 들춰내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있다. 이미 30년 전 종언을 고한 공산주의의 망령을 후손들이 소환해 사상 검증대에 세우는 것은 마녀사냥식이나 다를 바 없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는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서구 열강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에 눈과 귀를 닫았던 암울한 시기에 소련의 도움을 받아 일제에 응전하기 위한 불가피했던 선택으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오늘날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신냉전 상황은 엄중하다. 대한민국은 안보, 경제, 인구 등에서 삼각파도를 맞고 있다. 이런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은 역사의 정치 쟁점화가 아니라, 국민통합을 위한 ‘열린 사고’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의 용광로’에서 찾아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중에 누가 감히 홍범도 장군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누구도 오늘날 잣대로 100년 전 홍범도 장군을 오명으로 덧칠할 자격이 없다. 우리 에게 필요한 것은 순국선열의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하고 또 가슴에 새기는 일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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