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박형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살아가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내게는 인연복(因緣福)이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겪게 된 커다란 상처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서 그렇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작은 것들이 주는 행복은 의외로 많다. 

우리는 불교와의 인연을 말할 때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비유를 든다. 맹구우목은 깊은 바다 속에서 사는 눈 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그때 마침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난 확률을 말한다. 그만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는 우화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수행승들에게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다니는 널빤지의 뚫린 구멍에 목을 끼워 넣고 망망대해에서 쉬는 것이 한번 타락한 곳에 떨어진 어리석은 자가 다시 사람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보다 빠르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 맹구우목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그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이다. 

지난 학기부터 건학이념 전공교과목으로 개설한 <미디어와불교시창작입문> 수업에서 한 학생이 쓴 시가 인상 깊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는 아파서 물렁한 뭇국밖에 못드셨는데 거기 들어 있는 고기를 빼먹으려고 할아버지의 밥상을 자주 뺏었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물렁한 뭇국’이라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먹는 적막하고 쓸쓸한 음식으로 형상화한 이 시가 오래 감동의 여운으로 남았다. 

손톱 위에 묻은 흙처럼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다는 ‘조갑상토(爪甲上土)’라는 비유가 불교에 있듯이, 이 시의 할아버지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그 학생과 인연으로 만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그 학생은 ‘언제 다시 만날지 왠지, 눈물이 난다’로 끝맺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처럼 아무리 작고 사소하다 해도 내 안에 있는 감성적인 삶과 기억을 다른 존재들과 함께 나눌 줄 알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면 그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에 다른 존재들에 대한 자비의 감정이 싹틀 것이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